인문학

김수영의 <눈> 제대로 해석하기(feat. 시어 '기침', '죽음'과 '눈'의 의미에 관하여)

동사힐 2022. 9. 2.

김수영의 시 <눈>을 제대로 해석해보고자 합니다.


김수영의 <눈> 해석

1960년대 저항시인으로 유명한 김수영 시인은 모더니스트로도 유명했는데요. 아쉽게도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하였기에, 그의 작품과 생애에 대한 논란은 지금까지도 다양합니다. 그중에서도 오늘 살펴볼 김수영의 시 <눈>은 해석에 있어서 상당한 이견을 보이고 있는데요. 오늘 김수영의 시 <눈>을 제대로 해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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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살펴볼 김수영의 <눈>에 대한 해석은 기존의 교과서에서 하고 있는 해석과 더불어 여러 논문을 참고해서, 저의 주관적인 의견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따라서 제가 블로그에 기록하는 내용은 비판적으로 바라보셔야 할 것이며, 이 내용을 근거로 문제를 풀이하시면 원치 않는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출제자의 의도가 깔려져 있는 것이기에, 제가 바라보는 관점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면 본격적으로 김수영의 시 <눈>을 살펴보겠습니다.

 

 

김수영의 시 <눈>을 꼼꼼하게 읽어보겠습니다.


눈 (김수영)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靈魂)과 육체(肉體)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 1956 김수영, ‘눈’

위 시는 1956년에 김수영 시인이 발표한 <눈>의 전문입니다. 해당 시와 관련해서 조금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시를 꼼꼼하게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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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눈>에서는 하늘에서 눈이 내려 마당을 덮었습니다.
  2. <눈>의 화자는 젊은 시인에게 기침을 눈 위에 하라고 청유(함께 행동하길 권유)하고 있습니다.
  3. 눈은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해서 밤새도록 살아있습니다.
  4. 화자는  눈을 바라보며  가래를 뱉으라고 젊은 시인에게 청유하고 있습니다.
  5. 동일한 문장에, 문장 요소를 추가하여 점층적으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6. 밤새 내 가슴에 고인 가래는 부정적 의미를 지닌 시어이고, 이를 화자가 뱉어내는 행위를 의미하는 시어는 기침으로 긍정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가래와 기침은 이로써 대립적 의미를 지닌 시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김수영의 시 <눈>을 꼼꼼하게 읽어보았는데요, 이제 '기침'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화자가 기침을 하자고 말하는 이유를 생각해보겠습니다.

 

화자는 왜 "기침"을 하자고 말하였나?


<눈>에서 화자는 왜 기침을 권하는가?

김수영의 시 <눈>에서 "기침을 하자"는 무려 6번이나 반복됩니다. 4연에 16행으로 이루어진 시에서 무려 6번 반복이면 거의 1/3이상 반복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김수영의 시 <눈>에서 "기침"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데요.

따라서 <눈>에서 시어 "눈"과 "죽음"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침"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먼저 일반적인 "기침"의 이미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기침’의 이미지

기침은 있는 힘껏 해야 답답함이 해소된다.
소리도 시끄럽고, 힘도 많이 든다.
그러나 기침을 하면 누군가 있구나, 살아있구나 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요즘에는 잘 쓰지 않는 표현중에 어르신에게 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어르신, 기침하셨습니까?

여기서 기침은 잠자리에서 일어났다는 한자어인데요, 인기척을 낼 때 기침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물론 잠자리의 기침과 콜록콜록 기침은 한자어가 다른 의미지만, 소리는 같은 동음이의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하튼 기침은 몸 속에 있는 부정적인 것을 뱉어냄과 동시에 아직 생명력이 있는 살아있음을 나타내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기침의 이미지를 떠올려볼때 화자가 기침을 말하고자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화자가 "기침"을 하자고 말하는 이유

비굴하고 속물적인 일상 속에서 잃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되찾는 행위임.
내면의 불순함을 뱉어 내고자 하는 의지.
또한 살아있음을 드러내고, 저항하자는 의지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결국 기침을 통해 부정적인 것을 이겨내고, 삶과 생명을 회복하며, 내 안의 불순물을 솎아 내고자 기침을 하자고 화자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래와 기침의 상징적 의미

시어 상징적 의미
가래 내면의 부정적인 요소, 소시민성, 속물적인 근성, 일상성
기침
(=기침을하자)
부정적인 요소를 뱉어내자. 내면의 불순함을 뱉어 내고자 하는 의지

위와 같이 가래와 기침의 상징적 의미를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수영의 <눈>에서 "죽음"과 "눈"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김수영의 <눈>에서 시어 죽음과 눈의 의미는?

김수영의 시 <눈>에서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에 대한 해석이 달라집니다. 각각의 경우에서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는 어떤 의미로 해석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어느쪽이 더 자연스러운지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① ‘죽음’을 부정적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 

'죽음'을 부정적 의미로 해석하면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는 순수한 영혼과 육체로서 죽음을 초월한 존재로서 긍정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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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죽음’을 긍정적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

'죽음'을 긍정적 의미로 해석하면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는 죽음을 잊어버리고 산다는 것은 거짓된 삶을 산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된다.

특히 세상의 위선과 거짓과 비겁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또 냉소적이고 공격적이었던 김수영에게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는 세상의 온갖 비리와 부패와 거짓의 주체로서 강한 부정의 대상이 된다.

 

이렇게 "죽음"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면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의 해석도 달라지는데요. 이에 따라서 김수영 시 <눈>의 제목이기도 한 시어 "눈"에 대한 해석도 달라집니다.

 

①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긍정적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 

눈은 순수한 생명력, 양심, 비속물성, 영원성으로 긍정적으로 해석된다.

 

②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부정적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

눈에는 진실과 사실의 추한 모습을 깨끗하게 덮어버리는 거짓과 은폐의 의미로 부정적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눈의 해석도 완전히 반대로 됩니다. 대부분 현재 학교나 참고서, 문제집 등에서는 당연히 ① 해석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석하는지 같이 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수영의 <눈> 기존의 해석 : 눈은 순수한 생명이다.



눈은 살아 있다. ➥순수한 생명력, 양심, 비속물성, 영원성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살아 있는 눈 : 부정적 현실 속에서도 깨어 있는 존재
➥어구의 첨가에 의한 점층적 수법과 반복으로 의미를 강조함.

▶1연) 살아 있는 눈 - 눈의 순수한 생명력


기침을 하자. ➥비굴하고 속물적인 일상 속에서 잃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되찾는 행위임.
젊은 시인(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순수하고 가치있는 삶을 추구하는 존재. =3연의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화자의 반성적 행동과 결단을 촉구함.
눈더러 보자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는 행위가 자유롭지 않았음을 나타냄.
기침을 하자.

▶2연) 눈을 향한 기침 - 자기 정화 ·불순한 삶의 거부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靈魂)과 육체(肉體)를 위하여
➥순수한 영혼과 육체로서 죽음을 초월한 존재 →젊은 시인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새벽’과 ‘밤’(=죽음)의 대립구도.

▶3연)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는 눈 - 눈의 순수한 생명력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시적 화자와 동일시되는 존재임.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가래: 소시민성, 속물적인 근성, 일상성
➥‘밤’으로 상징되는 부정적인 현실속에도 절망하지 않고
마음껏 뱉자.
➥내면의 불순함을 뱉어 내고자 하는 의지 강조

▶4연) 가래를 뱉는 행위 - 자기 정화 ·불순한 삶의 거부


위 해설은 교과서나 참고서 등에서 설명하는 내용을 인용한 것인데요. 이러한 해석에 근거하여 김수영 시의 <눈>은 "순수하고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소망과 의지"를 드러낸 작품으로 주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눈과 기침에 대한 우리의 의문을 풀어 줄 수 있는 단서는 3연에 나온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가 바로 그것이다. 김수영의 시에서 ‘죽음’은 두려움이나 비겁함 등의 의미로 나타난다. 말하자면 ‘눈’은 진실을 외면하는 비겁함이라든가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두려움 등을 떨쳐 버린 정직하고 순수한 존재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눈은 밤이 지새고 새벽이 지나도록 백색의 강렬한 육체를 통해 순수와 정직의 참모습을 생생히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생생히 살아 있는 강렬한 존재 앞에서 순수와 정직을 표방하는 젊은 시인이라면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고 화자는 권유한다. 그러나 이 권유는 전체 문맥으로 볼 때 권유가 아니라 명령에 가깝다.

그러면 기침을 하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시인은 기침을 하는 것의 강화된 형태로 4연에서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 마음껏 뱉자”고 말했다. 기침과 가래는 젊은 시인이 보여 줄 행동의 의미를 공통적으로 드러내는 매개물이다. 기침을 한다는 것은 보통 때에는 토로하지 못했던 자신의 진실한 육성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의 제약 때문에 직접 드러내지 못했던 속마음을 순수와 정직의 표상인 눈 앞에서는 마음 놓고 드러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저 순결한 백색의 표상 앞에서는 저마다는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가 되어 두려움과 비겁함을 떨쳐 버리고 진실한 육성을 토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진실한 육성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마음 속에 갇힌 울분, 혹은 진실의 토로를 가로막는 비겁함이나 두려움 등을 뱉어 내 보라는 것이다. 진실한 육성이 ‘기침’이라면 ‘울분, 비겁함, 두려움’ 등은 가래에 해당할 것이다. 그런 것을 뱉어 내면 마음이 정화되어 언젠가는 자신의 정직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 이숭원, 교과서 시 정본 해설

이숭원 교수의 <교과서 시 정본 해설>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인데요, 교과서의 관점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정말 <눈>에서 눈은 순수한 생명을 의미할까?


김수영의 <눈>에서 '눈'은 정말 순수할까?

학생들이 수학능력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가장 많이 본다고 하는 EBS 수능교재를 포함하여 「눈」을 다루는 거의 모든 고등학교 교과서와 참고서는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구절을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순수하고 가치 있는 것에 대한 갈망을 지닌 사람을 위하여”라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 해석한다.

요컨대 ‘죽음을 초월하여 순수를 지향하는 존재’정도가 공통적인 의미 지평으로 제출되어 있다. 위와 같은 해석을 따르면, ‘죽음’은 순수한 존재 지평을 위해 빨리 잊어버려야 할 부정적 실체이다. 죽음을 잊어버릴 때, 영웅적 존재가 출현하고, 그 영웅적 존재는 참여 시인으로서의 김수영의 목소리와 결합하여 죽음과 도 같은 사회적 불의를 극복하는 존재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죽음을 잊지 않은 존재는 죽음의 두려움에 묶여 삶의 순수성과 영웅성에 도달하지 못할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박수연, 강요된 개성과 미완의 보편

위 글에서처럼 EBS수능교재를 포함하여 교과서와 참고서는 <눈>의 눈을 위와 같이 해석합니다. 이런 해석에 따르면 "죽음"은 빨리 잊어야만 하는 부정적 실체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김수영 시인도 죽음을 이렇게 생각했을까요?  다음의 글을 읽어보시죠.

김수영은 과연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의 시 「공자의 생활난」은 ‘바로 봄’과 ‘죽음’의 자세를 이야기함으로써 바로 봄이라는 삶의 목표를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라고 진술하면서 죽음으로 완성하는 시적 의미 지평을 열어보이고, 「구라중화」는 “사실은 벌써 멸하여 있을 너의 꽃잎 우에/이중의 봉오리를 맺고 날개를 펴고/죽음 우에 죽음 우에 죽음을 거듭하리/구라중화”라는 진술로 삶을 완성하는 죽음을 묘사한다.

이렇다는 것은 죽음이 초월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항상 삶의 옆에 존재함으로써 그 삶을 완성시켜주는 능력으로서의 일상적 사건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요컨대 ‘죽음’ 이야말로 그의 필생의 과제라고도 할 수 있는 ‘시의 현대성’을 위해 전제되어야 할 요인이다. 그것은 그러므로 ‘잊어버려야 할’ 사건이 아니라, 언제나 그 자신의 본래성과 삶의 현대적 출발을 위해 지녀 가지고 있어야 할 죽음이다.

그렇다면, 김수영에게 죽음을 잊어버렸다는 것은 삶의 의미를 상실했다는 뜻이 될 수밖에 없다. 그의 좌우명이 ‘상주사심(常住死心)’이었다는 것, 즉 ‘항상 죽음을 생각하며 산다’는 것이었다는 사실도 기억해둠직 하다.

 

이처럼 김수영의 시에서 ‘죽음’과 ‘죽음을 잊다’의 해석이 중요함을 위와 같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음 글을 읽어보면서, ‘눈’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죽음을 잊어버리고 산다는 것은 거짓된 삶을 산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된다. 특히 세상의 위선과 거짓과 비겁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또 냉소적이고 공격적이었던 김수영에게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는 세상의 온갖 비리와 부패와 거짓의 주체로서 강한 부정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부정적인 대상을 위해서 살아 있는 눈이 어떻게 순결하고 생명력있는 긍정이 될 수 있을까? 혹시 시인은 ‘눈’에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중략)
눈이 내려 쌓이면 이 세상은 순백이 된다. 눈은 모든 것을 하얗게 뒤덮는다. 집도 덮고, 마당도 덮고, 장독도 덮고, 쓰레기 더미도 덮고, 오물도 덮는다. 눈이 내려 쌓이면 이 세상의 모든 추함과 더러움도 보이지 않고, 온 세상이 깨끗해 보이고 평화로워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하면 눈에는 진실과 사실의 추한 모습을 깨끗하게 덮어버리는 거짓과 은폐의 의미도 있다. 마당에 떨어진 눈이 살아 있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아직 녹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눈이 녹으면 눈이 감추고 있던 여러 가지 진실과 사실들의 참모습이 노출된다. 그러나 눈이 녹지 않고 살아 있다면, 진실과 사실의 참모습들은 눈 아래에 은폐된 체로 있게 된다. 시인은 마당에 떨어져 새벽이 되어도 녹지 않고 있는 눈을 보면서, 그것이 감추고 있는 세상의 진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남호, 김수영의 시 「눈」의 해석에 대한 연구

 

눈에는 진실과 사실의 추한 모습을 깨끗하게 덮어버리는 거짓과 은폐의 의미도 있다.

 

또한 눈이 오고 나서 어정쩡히 녹은 눈을 보면 온갖 추함과 더러움이 함께 묻어 나옵니다. 과연 여러분들은 눈덮힌 땅을 바라보면서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떠올린 적이 몇 번이나 있나요? 특히 시골이나 산속이 아니라 도심 한복판에 내린 눈은 오히려 이 세상의 추악한 진실을 덮어버리고 감싸는 역할을 하지는 않았나요?

 

물론 이러한 김수영 시 <눈>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학교에서 통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도 있음을 생각하고, 남이 해석해준 시에 관한 지식을 외우기 보다는 자신이 스스로 시를 바라보고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더욱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오늘 김수영 시 <눈>해석에 관한 포스팅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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