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물위에 기름이 떠있는 것을 상상해 보자. 이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일반적으로 인식하기를 기름이 물과 섞이지 못하고 떠 있는 상태로 존재한다고 본다. 하지만 이 것은 단지 물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의 관점이다. 만약 물이 아닌 기름을 중심으로 바라볼 때에는 기름이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물이 기름 아래로 가라앉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즉 어떤 기준에서 사물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물의 의미가 달라 질 수 있다.
사물을 바라보는 기준은 개인마다 달라지는데 대개 사회의 기준이 개인에 내면화되면서 기준이 형성된다. 그러므로 사회의 기준이 곧 개인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사회화 과정이란 곧 사회 속에 태어난 개인들이 외부의 환경 (즉 사회)을 내면화해 가 결국은 사회와 다름없는 개인이 되는 과정을 뜻하는 것이다. 결국 개인을 보면 사회가 보이고 사회를 보면 개인이 보인다는 것이며 이 둘은 따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바라본다면 결국 개인마다 기준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따라 기준이 달라진다고 볼 수 있고 사회의 구조가 같다면, 또 그 사회를 동일하게 내면화한 개인들은 동일한 기준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사회의 변혁기 즉 사회의 구조 자체가 변화되는 시기가 있다. 패러다임의 전환 혹은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시기인데, 고대에서 중세로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 시기를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혁기에는 사회가 변함에 따라 개인은 다시 새로운 사회의 가치와 기준을 내면화하는 과정을 겪어야 하는데, 이러한 과정 속에서 개인과 사회의 괴리가 생겨나기도 한다.
가치 충돌의 시대
여기서 바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쓰인 1934년을 생각해보자. 이 때가 바로 사회구조가 급격히 변하는 시기인 것이다. 기존에 조선 사회속의 구조, 가치에 서구의 가치, 일본의 가치가 급격히 유입되어서 점차 기존의 조선의 가치를 밀어내던 그런 시기인 것이다. 사회구조가 점차 변하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변화, 충돌의 양상은 경성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서구의 가치, 일본의 가치를 대변해 주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도시이다. 또한 그 도시 안에서도 새로운 것에 쉽게 적응 하며 수용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기가 가지고 있던 그 가치를 고집하면서 새로운 가치에 괴리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우리가 살펴 볼 박태원, 그리고 그의 친구 이상 등의 사람(구인회)은 어쩌면 누구보다 빨리 이러한 서구의 가치들을 내면화시킨 사람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당대 최신 유행 갑바머리) 그렇게 내면화된 의식상태, 또 박태원 그 자신과 그 내면화가 만들어낸 소설들은 당시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또한 현재 우리는 어떻게 바라 볼 수 있으며 어떠한 것들을 얻을 수 있는가?
물론 여기서 의문이 들 수 있다. 진정 그들은 서구의 가치들을 내면화시켰다고 볼 수 있을것인가? 사회구조속에서 개인이 있으면서 사회구조의 영향을 받아 내면화를 시키는 것인데 짧은 유학생활 혹은 단순히 서구의 책들을 읽는다고 그렇게 빨리 기존의 가치관을 버리고 완벽히 내면화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면화를 했다 하더라도 과연 그 내면화가 얼마나 완벽한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하든 불완전하든간에 분명한 것은 이 들이 기존의 가치를 지닌 조선인들에 비해서 서구의 가치를 빨리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논의를 계속 진행한다.
당대 최신 유행이었던 갑바머리를 한 박태원. 그렇게 내면화된 의식상태, 또 박태원 그 자신과 그 내면화가 만들어낸 소설들은 당시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또한 현재 우리는 어떻게 바라 볼 수 있으며 어떠한 것들을 얻을 수 있는가?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서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어떠한 관점으로, 어떠한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사물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관점과 기준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얼마든지 다양한 관점과 기준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같은 사회 안에서 비슷한 사회화과정을 겪은 사람이라면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
소설이 쓰인 그 당시, 기존의 조선의 가치와 서구의 가치 그리고 일본의 가치가 서로 부조화되고 충돌을 일으켰었는데 앞서 얘기한 것을 살펴보았을 때 어느 한 가지에 중점을 두고 그 상황을 바라보면 안 될 것이다. 덧붙여서 과연 지금을 사는 우리에겐 새롭게 유입된 가치들이 어떻게 작용할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또한 이 때 들어온 서구의 가치, 일본의 가치, 사회구조, 사고 구조 등이 기존의 조선의 가치를 모두 밀어내고 자리를 잡아 우리도 모르게 이러한 구조를 내면화시키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자.
마지막으로 문학의 특성중에서 대표성, 그러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문학에 공감하며 또 그 문학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대표할 수 있을까와 많은 사람들을 대표하고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켜서 얻게 되는 대중성에 대해서 생각해보면서 1934년 당시의 상황과 박태원 소설의 위치 등을 함께 생각해보도록 하자.
박태원 연보
박태원은 소설가로 호는 몽보(夢甫) 또는 구보(丘甫, 仇甫, 九甫)이다. 서울 태생이며 1930년대의 대표적 소설가 중의 한 사람이다. 경성사범보통학교를 거쳐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29세 일본 호세 이대학[法政大學] 예과를 중퇴하고, 30세에 단편 《수염》을 발표하면서 작가가 되었다. 33세 이후 이태준(李泰俊)·이효석(李孝石)등의 작가들과 함께 구인회(九人會)의 주요 작가로서 활동하였다. 작품의 형식과 문장의 기교 등에 의식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며, 광고·전단 등의 대담한 삽입, 쉼표 사용에 의한 장문의 시도, 중간제목의 강조, 한자의 남용 등 독특한 문체를 낳았다.
그의 작품 경향은 프로문학 쪽과 같은 이데올로기 성향에 가담하지도 않았고, 이효석과 같은 예술지상주의에 기울지 않은 채 일제강점기 아래 작가 자신이 포함되어 있는 서울 서민층의 변모 양상을 객관적인 서술로 묘사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45세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에 피선됐고, 6·25전쟁중 월북해 평양문학대학 교수 등으로 재직하다 56세 남로당계열로 몰려 숙청당해 작품활동이 금지되었다. 60세에 복권 후 (계명산천은 밝아오느냐)를 집필했고 77세엔 국기훈장 제 1 급을 받았다. 77세부터 사망 때까지 완전실명과 전신불수의 몸으로 동학혁명을 소재로 한 (갑오농민전쟁) 3부를 완간했다.
박태원 소설의 특징
소설 속에 나타난 특징 중 하나는 산책이라는 가장 큰 틀 속에 의식의 흐름기법을 주로 사용한 점이다. 산책은 인간의 순수 기억 재생의 가장 좋은 조건으로써 개인의 섬세함을 옳게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그것은 주체로 하여금 생활에서의 직접적 반응을 차단시켜 방심, 몽상의 세계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이 것은 소설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 자아의식을 글 속에 그대로 표출해내는 바탕이 되었다. 그 바탕 속에서 구사된 방식이 바로 의식의 흐름기법이다.
이 기법은 특히 구보가 벗과 함께 대창옥에서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은 특히 전문화되고 세분화 되어 있는데 이 부분은 현재와 과거가 상호유통, 침투되어 있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가장 본격적으로 도입한 부분이다. 과거와 현재가 자유로이 넘나들며 그가 과거에 가지고 있던 기억들이 현재의 시간 속에 통합되어 하나의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현재와 과거가 서로 밀접한 관계를 지님을 소설 속에서 설명해 주는 것이다.
또 다른 특징은 사실성 추구이다. 박태원은 소설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 위해 주체의 의식에 치중하였다. 그러다 보니 작자 자신의 의식내부를 그리는 분위기에 젖게 되고 작자의 실제의식에 충실하다 보니 그 의식이 나오게 만드는 외부현실도 사실에 입각하게 되는 것이다.
박태원 소설의 기법
기법에는 앞서 언급한 의식의 흐름기법을 제외하고 크게 연상기법과 몽타쥬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연상기법은 박태원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표현 기법이다. 경험과 기억이라는 내적 세계 속에 있는 사건의 시간적 연속과 질서를 나타내는 연상은 과학과 상식에 익숙해져 있는 사건들의 엄격한 논리적 질서와 진행을 파괴함으로써 나타나는 무질서의 상징이다. 박태원은 연상 기법을 통해 구보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성격과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시대 대응 양상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신체적 자극, 상황적 자극, 무의식적 돌발적으로 표출 된다.
몽타쥬기법은 영상예술에서 자주 사용하는 기법으로 이 기법을 소설 묘사에 도입함으로써 우리 문학의 표현 방식을 한 단계 더 높여놓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기법이 소설에 응용될 때는 주로 시간 몽타쥬나, 공간 몽타쥬의 두 가지로 나타난다. 시간 몽타쥬는 주제가 공간에 고정되어 있고, 작중인물의 의식이 시간 속에서 변화하는 기법이다. 즉, 어느 한 시점의 영상과 관념을 또 다른 시점의 영상과 관념에 겹쳐놓은 방법으로 사용된다. 공간 몽타쥬는 시간이 고정되어 있고, 공간적인 요소만이 변화되는 방법을 말한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는 이 중 주로 시간 몽타쥬 방식을 많이 사용하면서 부분적으로 공간 몽타쥬 방식을 병용하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는 구체적으로 구보가 현실에서 행동하면서 추억에 빠져있는 장면에서 시간 몽타쥬와 공간 몽타쥬가 결합되어 나타나고 있다. 현재와 과거를 번갈아 제시함으로써 과거의 현재화, 또는 현재의 과거화를 바라는 구보의 심리를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구보의 현실인식과 추억을 교차시킴으로써 현실의 암울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지식인의 심리상태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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