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청포도가 생각나는 칠월(feat. 이육사의 청포도 제대로 해석하기)

동사힐 2021. 10. 26.

안녕하세요~  작가 동사힐입니다. 😊

청포도는 제 자녀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 중에 하나입니다.

청포도 좋아하시나요? 요새는 청포도하면 샤인머스캣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요.

샤인머스캣을 3년 전에 처음 먹었을 때 그 놀라운 단 맛에 한 번 놀랐고, 한 알에 천원꼴인 비싼 가격에 두 번 놀랐죠. 그래도 최근에는 가격이 많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샤인머스캣은 비쌉니다. 그런데 오늘은 샤인머스캣이 아니라 진짜 청포도, 바로 이육사의 청포도 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중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많이 인용되고 가르쳐지지만, 정작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시가 바로 이육사의 청포도인데요, 오늘 포스팅에서는 시인 이육사의 청포도를 제대로 해석해보고자 합니다. 그러면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이육사, 청포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두렴

                                                                       - 1939년 《문장》 8월호에 발표. 이후 《육사시집》에 수록

 

 

시인 이육사의 생애

이육사 시인의 생전 모습 (출처 : 위키백과)

 

먼저 청포도를 살펴보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작가를 이해해야 합니다. 표현론 혹은 작가론적 관점의 해석이라고도는 하는데요. 이육사 작가의 삶은 실제로 그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기에 매우 중요합니다.

시인 이육사는 어릴 때부터 한학 공부를 해왔고, 이 부분은 그의 시에 있어서 형태적 측면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내용적 측면 : 저항 정신

또한 이육사 시인은 평생을 조선 독립을 위해 열렬히 노력합니다. 이 부분은 그의 시의 내용적 측면에 영향을 끼치죠.

먼저 이육사 시인의 본명은 이원록입니다. 그런데 이육사라는 필명을 쓰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위키백과의 내용을 읽어보시죠.

하나는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받은 수인 번호 '264'의 음을 딴 '二六四'에서 나왔다고 전해지며,'李活'과 '戮史', '肉瀉'를 거쳐 '陸史'로 고쳤다고 전해진다. 1929년 이육사가 대구형무소에서 출옥한 후 요양을 위해 집안어른인 이영우의 집이 있는 포항으로 가서 머문 적이 있었는데, 이육사가 어느 날 이영우에게 "저는 "戮史"란 필명을 가지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다. 이 말은 '역사를 찢어 죽이겠다'라는 의미였다. 당시 역사가 일제 역사이니까 일제 역사를 찢어 죽이겠다, 즉 일본을 패망시키겠다는 의미였다. 이에 이영우는 "표현이 혁명적인 의미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니, 같은 의미를 가지면서도 온건한 '陸史를 쓰라'고 권고하였고, 이를 받아들여 '陸史'로 바꿔 썼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肉瀉'라는 이름은 고기 먹고 설사한다는 뜻으로 당시 일제 강점 상황을 비아냥거리는 의미로, 1932년 조선일보 대구지국 기자로 근무했을 적 대구 약령시에 대한 기사를 네 차례 연재할 때 사용되었다. 이육사의 필명이나 호를 순서대로 정리하면 李活(1926-1939), 大邱二六四(1930), 戮史(1930), 肉瀉(1932), 陸史(1932-1944)와 같고 이원록이 '陸史'로 불리게 된 연유이다. - 출처 : 위키백과

참고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01306 

이육사는 어렸을 때 아명(어린 시절 이름)으로 이원록이라 불리었습니다. 26살때 이활(李活)로 개명하였습니다.

이육사에 관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바로 수감되었을 당시 번호입니다. 죄수 번호 264. 그리하여 이육사라고 정하였습니다.

이후에 戮史로 바꿉니다. 이는 죽일 육, 역사 사자로 일본의 역사(일본 제국주의)를 죽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냅니다. 그러나 너무 노골적이어서 陸史 즉 뭍, 육지 륙과 역사 사자로 음차를 한 한자로 바꿉니다. 이 陸史는 1944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사용합니다.

그러다 1932년 기자 시절 고기 육(肉) 설사할 사(瀉)를 사용한 기록도 발견되었습니다. 이 역시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단어로 당시 일제 강점 상황을 비꼬는 의미로 사용한 것입니다.이처럼 시인 이육사는 자신의 이름에서 일제에 대한 맹렬한 저항 정신을 드러내며 평생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시인의 생애를 이해해야, 그의 시에 드러난 주제의식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형식적 측면 : 퇴계 이황의 14대손

이육사의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 꼭 함께 봐야 할 것이 바로 퇴계 이황의 14대손이라는 점입니다.

퇴계 이황 (출처 : 한국학 연구소)

시인 이육사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유학(한문학)을 배웠습니다. 서원의 본고장 경상북도 안동이 그의 고향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방송에서 안동의 유교식 제사가 행해지는 것을 보면, 이당시에도 유교 문화가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 보통학교에 진학을 하지만, 당시 보통학교의 국어(나랏말)는 일본어 과목이었습니다. 조선어 과목은 일본어에 비해 매우 적은 시간만 강의되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어릴 때 배웠던 유학(한문학)이 이육사에게는 뿌리와 같았고, 이는 훗날 일본에 저항하는 주된 정신적 지지대 역할로서 크게 작용합니다. 

동시에 이육사는 현대시 창작 활동을 하지만, 형식적 측면에서는 그의 정신적 뿌리인 한문학을 인용합니다. 

선경 후정의 묘사 방식이나 마지막 행의 첫 소절을 3글자로 시작하는 형태를 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단순히 내용적 측면뿐만 아니라 전통의 한문학 형식을  차용함으로써, 일본 제국주의에 처절히 저항하는 이육사의 고매한 정신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 대부분의 현대 시인들이 일본을 통해 신문학을 받아들였음을 본다면, 이육사의 이러한 노력이 얼마나 의미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근대 최고의 모더니즘 시인 백석 조차도 일본 유학 이후에 본격적인 시인 활동을 시작한 것만 보아도, 이육사의 이러한 형식미 추구는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윤동주 시인 조차 결국에는 일본에 유학을 갔기에, 그 당시에 우리 전통의 것을 근거로 현대시를 창작하려고 했던 이육사의 노력을, 단순히 그를 저항시인으로만 보기에는 편협한 시각입니다. 이육사는 가장 전통적인 것이 가장 자유로운 현대시임을 스스로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이런 노력에서 보자면 방언을 최대한 활용했던 백석의 모더니즘 정신과 연결되는 점이 있습니다.

그러면 유학을 공부한 이육사가, 어떻게 자신의 시에 형식을 도입하려고 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선경후정입니다. 선경후정이라함은 말그대로 경치가 먼저 보이고, 이에 대한 감정이 뒤따라서 나오는 것입니다. 조선의 시조나 가사에서 이러한 형식미가 자주 보이는데요. 퇴계 이황의 14대손인 이육사인만큼 퇴계 이황의 대표 시조인 도산십이곡의 제11수를 살펴봄으로써 선경후정을 이해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청산(靑山)은 어찌하여 만고(萬古)에 푸르르며,
   유수(流水)난 어찌하여 주야(晝夜)에 긋지 아니는고.
   우리도 그치지 마라 만고상청(萬古常靑) 하리라.
                                                                  -퇴계 이황, 도산십이곡 제11수

(초장)푸른 산은 어찌하여 오랫동안 푸르고,
(중장)흐르는 물은 어찌하여 밤낮으로 그치지 아니할까?
(종장)우리도 그치지 말고 오랫동안 항상 푸르리라!

라는 해석을 할 수 있는데요. 초장과 중장이 선경에 해당하고, 종장이 후정에 해당합니다. 먼저 자연의 경치를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제시하는 것인데요. 자연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의지를 다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이육사의 청포도를 살펴보면 1~3연까지 선경, 즉 내 고장과 청포도, 하늘과 바다의 아름다운 경치가 제시됩니다. 이어서 4~6연까지는 화자의 생각과 감정, 즉 정서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이러한 구조는 이육사 시인이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구조로서, 이육사 시인의 또다른 대표작품인 절정, 광야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청포도의 배경인 포항 호미곶

 

1939년, 당시의 조선

두번째로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 바로 1939년 시대적 배경인데요 이를 배경론적 혹은 세계관적 관점의 해석이라고 합니다.

1939년은 일본의 강권적인 식민지가 시작된지 무려 29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는데 무려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정도 흐르면 대부분의 많은 이들은 일본 식민 통치를 무력하게 받아들이고는 하죠, 

게다가 태평양 전쟁의 발발로 인해 조선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집니다.

이런 시대적 현실을 고려해야 합니다. 

정말 전쟁에 필요한 것이라면 고무신 하나까지라도 군수 물품으로 차출되었고, 당연히 조선의 대부분 사람들은 극심한 가난에 휘둘렸습니다. 풍요와 평화는 조선인에게는 사치나 다름없죠. 말그대로 꿈입니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면서, 이 시를 읽는다면 느낌이 확연하게 다릅니다. 사실 1939년에는 내 고장은 풍요로울 수 없는 공간입니다. 모든 것을 수탈당한 공간이니까요. 덧붙여서 이렇게 먹음직스러운 청포도가 열린다면, 그것조차 모두 조선인의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모두다 빼앗길테니까요.

어찌보면 청포도 속 내 고향은 무릉도원과 같은 유토피아적 공간인 것입니다. 결국 내가 바라는 손님이 오기 전까지, 청포도는 수확을 할 수도, 수확을 한다고 하더라도 먹을 수 없는 그런 역설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대적 배경을 이해한 상태로 이 시를 바라보면, 절망의 공간 속에서 끝까지 희망을 놓치지 않는 화자의 강인한 의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포항 호미곶 청포도 시비 (출처 : http://homigot.invil.org/index.html?menuno=568324&lnb=40109)

 

청포도 꼼꼼하게 읽기

청포도 핵심 분석

시죠. 내 고장 (공간)에서 청포도(사물)는 7월(시간)에 익습니다. 공간과 시간, 사물이 1연에서 모두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어서 '마을에 전설이 주절이 주절이 청포도처럼 열리고, 하늘이 알알이 청포도처럼 들어와 박힌다'고 2연에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전설'과 '하늘'은 모두 추상적인 개념인데, 청포도라는 구체적인 사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강렬한 시각 인상을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3연에서는 '하늘 밑에 바다가 열리고 돛단배가 밀려서 오면'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유심히 살펴볼 것은 바로 '밀려서 오면'입니다. 이 '밀려서 오면'은 조건절입니다. 시제적으로 미래형입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인 것이죠. 화자가 조건절로 말하는 이유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올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바로 이 미래형 조건절 속에 표현하는 것입니다. 

4연에서 '화자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3연의 조건절과 연결되면서 4연 역시 아직은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이나, 이것은 이미 과거에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전설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드러내는 기제로서 3연과 함께 의미를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화자가 바라는 손님을 통해서 독자도 자신이 바라는 손님을 생각해봄으로써 화자와 독자의 생각이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5연에서 화자는 손님과 함께 포도를 따먹고 싶어 합니다. 이 부분이 중요한데, 손님이 오지 않으면, 이 풍요는 진정 나와 우리의 풍요가 아닌 것입니다. 아무리 청포도가 맛있게 익어가도, 손님이 없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모두 빼앗깁니다. 그만큼 손님은 화자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중요한 존재입니다.

6연에서 화자는 먼저 '아이'를 부릅니다.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아이야'는 시조의 종장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입니다. 전통을 계승하여 현대시를 창작한다는 작가의 형식적 특징이 드러납니다. 동시에 청포도라는 시 역시, 손님이 반드시 온다는 '전설'에 기반한 시입니다. 전설과 전통은 모두 옛부터 지금까지 내려온다는 의미에서 공통점을 갖습니다. 과거를 기반으로 현재를 내딛고, 미래를 기대한다는 점에서 의미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시 수건 (출처 : https://blog.daum.net/acejolly/2667)

이어서 화자는 손님을 위해 은쟁반과 모시 수건을 준비합니다. 모두 흰색 색채의 이미지로 고결하고 순수한 의미입니다. 그만큼 손님은 귀한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손님의 격에 맞게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육사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이러한 면에서 상당히 기독교 메시아 대망 사상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재림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이얀 세마포를 입고 반드시 돌아온다고 하였습니다. 이육사의 생애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였다는 기록은 없지만, 성경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은 추정이 듭니다.

이육사의 청포도는 전설(과거)과 앞으로 올 손님(미래)이 익어가는 청포도의 시간(현재)에 연결되는 시입니다. 아직 오지 않은 손님을 위해, 과거의 전설을 기반으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바로 은쟁반과 모시 수건을 준비하는 시입니다. 아쉽게도 아직 손님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은쟁반 위에 풍요의 결실인 청포도를 올려놓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청포도를 올려놓을 때가 올 것입니다. 손님은 반드시 돌아올테니까요.

색채의 대비도 중요한데요, 청포도, 하늘, 바다, 청포의 색은 파란색이고, 돛단배, 쟁반, 모시 수건의 색은  흰색이다. 파란색과 흰색을 통해서 시인은 강렬한 시각 인상을 독자에게 주고, 동시에 담담한 어조와는 달리 강력한 기대와 희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청포도 시어의 상징적 의미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깨끗한 옷을 입고 찾아옵니다. 손님은 비록 지치고 힘든 상태이지만, 깨끗한 푸른색 옷을 입음으로 순수하고 고결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희망을 품고 있는 존재입니다. 손님은 화자가 간절히 바라는 순수하고 고결한 희망의 존재이기에, 화자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손님이 오면, 진정한 풍요를 누릴 수 있고, 동시에 전설에서 반드시 온다고 이야기하는 그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때 청포도는  ‘하늘’과 ‘바다’와 ‘내 고장’이 통합된 이상적인 결실입니다. 평화롭고 풍요로운 세상이라면 청포도는 마음껏 열립니다! 그런데 청포도가 오랫동안 열리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메마른 세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랜 가뭄과 수탈로 인해 피폐해진 너무나 슬픈 세상입니다. 그래서 청포도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열린다고 하더라도 정작 그것을 누릴 수는 없습니다. 어차피 뺏길 것이기 때문이빈다. 이런 세상이라면 차라리 열리지 않는 것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청포도가 곧 열리려고 합니다. 

탐스러운 결실을 맺어가는 청포도를 보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전설에 기대어, 손님을 기대해봅니다. 아직 오지 않았으나, 이미 와 있는, 오고 있는 손님. 그 손님과 함께 우리는 진정한 청포도를 함께 누릴 것입니다.

‘청포도’는 단순히 여름 한 철의 과일이 아니라 ‘하늘’과 ‘바다’와 ‘내 고장’이 통합된 이상적인 결실(結實)이 아닐 수 없다. 요컨대 ‘소년’의 꿈을 향한 ‘벌거벗은 생명’(‘나’)의 간절한 기원은 ‘청포도’를 그것의 오랜 파종자이자 최초의 주인이었던 ‘손님’, 아니 내 정신과 육체의 먼 기원과 함께 따 먹음으로써, 곧 동일화됨으로써 현실화의 가능성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청포도」 끝 연의 식탁 위 ‘은쟁반’과 ‘하이얀 모시 수건’은 내 손을 닦을 도구로 그치기는커녕 ‘청포’ 입은 ‘손님’의 몫, 다시 말해 그와 동일화되기 위한 시적 자아의 ‘순백의 내면’에 상응하는 객관적 상관물이라 할 만하다. -최현식, 귀환하는 ‘벌거벗은 생명’, 도래하는 ‘초인’의 시

객관적 상관물이란?

끝으로 청포도를 이해하기 위해서 객관적 상관물이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합니다. 

 객관적 상관물이란 정서를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물을 지시하는 가운데 간접적으로 정서를 환기하는 방법으로, 정서를 상징적으로 암시하는 시적 기법이다. 즉 일상 생활의 감정이 그대로 문학 작품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어떤 이미지, 상징, 사건에 의해 구현된다는 것이다. 엘리엇에 따르면 “예술의 형태 속에 정서를 표현하는 유일한 길은 객관적 상관물을 발견하는 데 있다. 달리 말해 어떤 정서를 나타낼 공식이 되는 한때의 사물, 정황, 사건들로써 바로 그 정서를 곧장 환기시키도록 제시된 외부적 사건을 발견하는 데 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 용어는 엘리엇이 햄릿의 문제점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사용하였으나, 그 후 문학 비평에서 빈번히 정서나 상징적 형상을 나타내는 정도의 내포로 널리 사용되었다. 이런 생각은 어떤 대상에 대해 직접적으로 감정을 토로하는 일이 예술일 수 없다는 반낭만주의적 발상에 토대를 두고 있다. 즉 개인적인 감정은 어떻게든지 객관화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객관적 상관물이 필요하다는 견해이다.

 문학에서 객관적 상관물은 시 감상의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특정한 시적 정황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있어 객관적 상관물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객관적 상관물은 현대시의 대표적인 시적 기법인만큼, 어떤 상황이나 정서를 있는 그대로 나타내지 않고 상징적 형상으로 나타내는 방식의 새로움이나 의의를 탐구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할 것이다.

 객관적 상관물을 쉽게 설명하자면, 자신의 추상적인 감정을 구체적인 사물로 표현함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 추상적인 감정을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선경후정 구조를 말씀드렸는데, 선경후정 역시 일종의 객관적 상관물입니다. 먼저 제시된 구체적인 경치만 보고서도 어느 정도 추상적인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면, 객관적 상관물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제시된 후정을 통해서 독자는 자신이 떠올린 감정을 재확인할 수 있는 것이죠.


 시 뿐만 아니라 모든 글은 감정만 나열하면 재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장면을 제시하고, 사물을 제시해야 훨씬 더 풍성한 감정을 읽을 수 있죠. 그래서 소설에서도 직접 제시보다 간접 제시를 더욱 중요시 여깁니다. 특히나 일제 강점기 하에서 문학이 혹독한 검열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객관적 상관물을 통한 간접 제시입니다. 더욱 재밌는 것은 일제 강점기하 친일 문학들은 대부분 직접 제시의 방법을 활용하여 아주 노골적으로 선전을 하였습니다. 내용면에서도 문학적 가치가 없지만, 형식면에서도 전혀 가치가 없습니다. 단순히 친일 문학이라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구요.


 친일 문학은 그런 고민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돌려 표현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대놓고 표현을 했어야 일본으로부터 인정받았을테니까요. 그런면에서 일제 치하의 암흑기는 우리 문학을 더욱 성장시키고, 풍성하게 만들었던 위장된 축복의 시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제의 그 악랄한 탄압이 있었기에, 우리는 윤동주와 백석 그리고 이육사라는 현대시의 보물을 얻었고, 이는 임화의 서구 문학 이식론에 대응하는 문학사적 이론을 수립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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