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 사내가 들어와 국수 두 개를 시켰다. 손님이 방을 원해서 어머니는 안방에 상을 봐줬다. 국수와 고추 다대기, 김치 한 종지가 전부였다. 사내는 빈 그릇을 하나 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왜 그런가 싶어 사내의 행동을 유심히 살폈다. 사내는 자기 맞은편 국수 위에 빈 그릇을 엎어놓았다. 혹여 국수가 식을까 봐 그러는 거였다. 곧이어 한 여자가 나 타났다. 여자는 방긋 웃은 뒤 그릇을 걷고 젓가락을 들었다.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댄 채 조용하고 친밀하게 국수를 먹었다. 어머니는 멍한 눈 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그런 일상적인 배려랄까, 사소한 따뜻함을 받아보지 못한 ‘여자의 눈’ 으로 처음 손님을 대하던 순간이었다. 밥 잘하고 상말 잘 하던 어머니는 부엌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살면서 중요한 고요가 우리 머리 위를 지날 때가 있는데, 어머니에게는 아마 그때가 그 순간이었을 거다.
-김애란, 칼자국
-김애란, 칼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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