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울진선교 4일차 목요일 고등부 사역 후기
이번 고등부 사역은 아무런 계획과 준비없이 진행되었다.
사실 내가 고등부 조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등부 사역을 전혀 준비하지 않았고 특히 핵심이었던 GBS 교재를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
그저 새벽에 기도만 했다. 정말 열심히 새벽기도와 울진선교기도회에 참석했다.
애초에는 학원선교부 사역 GBS를 참고하여 교재를 만들려고 했는데 결국 선교 둘째날 화요일 저녁에 급하게 말씀 구절을 정하고 만들었다.
그리고 결국 셋째날 수요일 십계명 설교와 넷째날 목요일 GBS를 사랑을 주제로 자연스럽게 연결시켰다.
하나님께서 그때 그때 순간순간마아 지혜를 주셔서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끌어가셨다.
그렇게 나는 온전히 하나님께서 주인되시는 사역에 전적으로 의지하며 나아갔어야했는데 나의 교만한 마음 옛습관이 결국 드러났고, 나는 목요일 마지막 사역을 하면서 GBS 진행과 레크레이션을 하다가 결국 선교대원들과 금천 아이들에게 짜증과 분노를 터트렸다.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결국 난 그렇게 정죄를 해버렸다.
그런데 난 그 정죄로 인하여 내 모든 기쁨을 잃어버렸다. 나의 죄성 옛습관 옛자아를 직면했기 때문이다.
나는 분노를 하면 양 미간에 주름이 잡히면서 표정에 다 드러난다.
화평과 화목을 깨고 공동체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나의 죄는 정말 나의 의지로 고칠 수가 없다.
철저한 은혜로 덮는 것만이 가능하다.
그런데 사실 이런 상황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크게 작용했다.
첫번째는 GBS시간에 부어진 큰 은혜. 간증을 들으며 나의 상한 마음이 회복되었으며
두번째는 세족식을 할 때 학생들에게 편지를 쓰게 한 것. 원래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마음 주셔서 세족식을 마친 학생들에게 편지를 쓰게 했다.
사실 고등부 학생들이 하도 딴짓해서 쓰게 하려고 마음먹었는데 세족식 안한 학생들은 안 쓰게 한 것이 어찌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원래의 내 성격이었다면 세족식 안하고 대기하고 있으면서 편지를 쓰게 했을 것이다. 그러면 분명 은혜로운 간증이나 편지가 없었을 것이다.
조급해하지 않고 세족식 다한 학생들부터 순서대로 편지쓰게 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다.
셋째 호성이의 편지. 교회 몇번 오지 않은 호성이. 4년동안 금천에 가면서 처음 봤던 그 아이. 성경학교 둘째날 수요일에 등장했고 목요일에도 느즈막히 왔던 아이. 계속 집중안하고 게임하고 선교랑 장난치기 바빴던 호성이가 십계명, 십자가, 사랑의 핵심 내용을 잘 듣고 기억하여 그것을 편지에 쓴 것이 어찌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신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님을 자꾸 깨닫게 하시고 고백하게 하신다.
속지마라.
집중하고 있어도 집중하는 척하며 전혀 다른 생각하고 듣지 않을 수도 있으며...
다른짓하고 있어도 모두 다 듣고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속단하지 마라.
판단하지 마라. 정죄하지 마라.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너의 사역 아니다. 네가 하는거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빼앗기는 이유는 나의 자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내가 주인되려는 그 내밀한 죄성이 고개를 들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모두 잃어버린다.
나는 작년 재작년 울진선교에서 팀장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이 전혀 없이 선교를 했음을 고백한다.
내 열심과 노력 그로인한 거짓기쁨과 나의 교만함, 인간적인 성취감으로 사역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회칠한 무덤이었음을 회개한다.
그리고 이 마른뼈와 같은 나의 내면을 주님께서 다시 살리시길 간절히 바란다.
긍휼과 은혜만이 내가 살 길이다.
최근에 나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자꾸 나의 죄를 직면케 하고 드러내시고 덮으신다.
이것이 물론 너무나 고통스럽고 쓰라렵지만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오늘의 후기를 마치고자 한다.
이번 고등부 사역은 아무런 계획과 준비없이 진행되었다.
사실 내가 고등부 조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등부 사역을 전혀 준비하지 않았고 특히 핵심이었던 GBS 교재를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
그저 새벽에 기도만 했다. 정말 열심히 새벽기도와 울진선교기도회에 참석했다.
애초에는 학원선교부 사역 GBS를 참고하여 교재를 만들려고 했는데 결국 선교 둘째날 화요일 저녁에 급하게 말씀 구절을 정하고 만들었다.
그리고 결국 셋째날 수요일 십계명 설교와 넷째날 목요일 GBS를 사랑을 주제로 자연스럽게 연결시켰다.
하나님께서 그때 그때 순간순간마아 지혜를 주셔서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끌어가셨다.
그렇게 나는 온전히 하나님께서 주인되시는 사역에 전적으로 의지하며 나아갔어야했는데 나의 교만한 마음 옛습관이 결국 드러났고, 나는 목요일 마지막 사역을 하면서 GBS 진행과 레크레이션을 하다가 결국 선교대원들과 금천 아이들에게 짜증과 분노를 터트렸다.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결국 난 그렇게 정죄를 해버렸다.
그런데 난 그 정죄로 인하여 내 모든 기쁨을 잃어버렸다. 나의 죄성 옛습관 옛자아를 직면했기 때문이다.
나는 분노를 하면 양 미간에 주름이 잡히면서 표정에 다 드러난다.
화평과 화목을 깨고 공동체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나의 죄는 정말 나의 의지로 고칠 수가 없다.
철저한 은혜로 덮는 것만이 가능하다.
그런데 사실 이런 상황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크게 작용했다.
첫번째는 GBS시간에 부어진 큰 은혜. 간증을 들으며 나의 상한 마음이 회복되었으며
두번째는 세족식을 할 때 학생들에게 편지를 쓰게 한 것. 원래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마음 주셔서 세족식을 마친 학생들에게 편지를 쓰게 했다.
사실 고등부 학생들이 하도 딴짓해서 쓰게 하려고 마음먹었는데 세족식 안한 학생들은 안 쓰게 한 것이 어찌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원래의 내 성격이었다면 세족식 안하고 대기하고 있으면서 편지를 쓰게 했을 것이다. 그러면 분명 은혜로운 간증이나 편지가 없었을 것이다.
조급해하지 않고 세족식 다한 학생들부터 순서대로 편지쓰게 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다.
셋째 호성이의 편지. 교회 몇번 오지 않은 호성이. 4년동안 금천에 가면서 처음 봤던 그 아이. 성경학교 둘째날 수요일에 등장했고 목요일에도 느즈막히 왔던 아이. 계속 집중안하고 게임하고 선교랑 장난치기 바빴던 호성이가 십계명, 십자가, 사랑의 핵심 내용을 잘 듣고 기억하여 그것을 편지에 쓴 것이 어찌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신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님을 자꾸 깨닫게 하시고 고백하게 하신다.
속지마라.
집중하고 있어도 집중하는 척하며 전혀 다른 생각하고 듣지 않을 수도 있으며...
다른짓하고 있어도 모두 다 듣고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속단하지 마라.
판단하지 마라. 정죄하지 마라.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너의 사역 아니다. 네가 하는거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빼앗기는 이유는 나의 자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내가 주인되려는 그 내밀한 죄성이 고개를 들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모두 잃어버린다.
나는 작년 재작년 울진선교에서 팀장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이 전혀 없이 선교를 했음을 고백한다.
내 열심과 노력 그로인한 거짓기쁨과 나의 교만함, 인간적인 성취감으로 사역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회칠한 무덤이었음을 회개한다.
그리고 이 마른뼈와 같은 나의 내면을 주님께서 다시 살리시길 간절히 바란다.
긍휼과 은혜만이 내가 살 길이다.
최근에 나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자꾸 나의 죄를 직면케 하고 드러내시고 덮으신다.
이것이 물론 너무나 고통스럽고 쓰라렵지만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오늘의 후기를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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