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로그/독서 기록

<생긴 대로 살아야지> 리뷰(feat. 부산연제고 학생시집)

동사힐 2022. 9. 29.

최근 부산 연제고 학생들이 쓴 시집 <생긴 대로 살아야지>를 읽었습니다.


최근에 부산연제고등학교 학생들이 쓴 시집 <생긴 대로 살아야지>를 읽었습니다.

<생긴 대로 살아야지>는 국어교사인 구자행 선생님께서 지난 2017년 1월에 펴낸 학생 시집인데요.

&lt;생긴 대로 살아야지&gt; 앞표지

이 시집을 엮은 구자행은 시집 <생긴 대로 살아야지>뿐만이 아니라 <버림받은 성적표>, <기절했다 깬 것 같다> 등 다양한 학생 시집을 엮은 교사이기도 합니다.

반응형

국어교사로 근무하면서 지속적으로 학생의 시 창작 활동을 하셨고, 그 결과를 꾸준하게 다양한 시집으로 엮어서 내고 계시는데요.

페이스북, 홍경란
페이스북
-홍경란
친구들끼리 모여 밥을 먹고 쉬고 있었는데
애들을 둘러보니 하나같이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다.
그것도 하나같이 페이스북을 하면서 말이다.
같이 먹은 음식 사진을 찍어 올려놓고
그 사진에 댓글을 달며 대화를 하는데
바로 옆에 딱 달라붙어 있으면서
글로 대화를 나누는 게 보기 좋지 않았다.
나도 그들 중에 하나였는데 말이다.
감정 없는 대화를 나누는 게
스마트폰 폐해인 것 같다.
나부터 휴대폰 화면보다 친구의 눈을 봐야겠다.


요새 학생들은 페이스북을 안하죠. 대개 인스타그램을 하는데요.

페이스북을 하는 학생들의 경험이 시로 들어나는 것을 보면, 학생들의 시도 사회문화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학생시도 하나의 미시사이며, 학생 하나하나의 역사를 담는 기록으로서 가치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오늘은 <생긴 대로 살아야지>를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생긴 대로 살아야지>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lt;생긴 대로 살아야지&gt; 뒷표지

<생긴 대로 살아야지>를 엮은 구자행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시 쓰고 놀았던 행복한 시간을 나누고 싶다
반응형

이 글을 읽는 분들은 한 번 자신의 학창시절을 떠올려보았으면 합니다.

과연 학교 다니면서 시를 쓰고 놀면서 행복했던 시간이 있었는지요?

저는 초중고를 다니면서 시에 대해 배우고, 문제를 풀었던 기억은 있지만, 사실 한 번도 시를 쓰고 놀았던 시간은 없었습니다.

수업시간이 행복했던가? 물어보면 결코 아니라는 답을 하기 마련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태권도를 배우면 태권도를 하고, 피아노를 배우면 피아노를 합니다.

컴퓨터를 배우면 컴퓨터를 하고, 영상 편집을 배우면 영상 편집을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시를 배우면서도, 시를 쓰지 않을까요?


저는 이러한 역설이 너무 싫었습니다. 실제로 저는 백석이나 윤동주뿐만이 아니라 박준이나 신철규 등의 다양한 시인들의 무수한 작품을 많이 감상했지만, 한 번도 내가 시를 써보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생각 가운데 우연히 알게 된 학생시집을 읽으면서, 나도 이 학생들처럼 시를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나도 학교 다닐때 이런 선생님을 만나서 시를 한 편이라도 써보았다면, 아마 잊을 수 없는 학창 시절을 보냈을 텐데라는 진한 아쉬움도 남습니다.

그러나 이미 30여년 전 학창 시절을 떠올려도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여기 이 포스팅에 <생긴 대로 살아야지> 시집의 일부를 담고, 저의 감상을 남김으로써, 누군가에게 시는 결코 어려운 것도 아니며, 이 정도라면 나도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으면 합니다.

학생들은 왜 등교 전에 짜증을 부릴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저는 중고등학교 통학 시간이 한 시간이 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저희집 근처에 중고등학교가 없었고,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지만 중고등학교에 갈 수 있었습니다.

사실 초등학교는 (엄밀히 따지면 국민학교였지만 그때는) 버스로 3정거장 떨어져 있었으니, 중고등학교를 걸어서가 아니라 무려 1시간 이상 가야 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지지 않고,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였을지도 모릅니다.

당연히 그때 중고등학교의 등교시간은 7시50분까지였고, 그러면 집에서 6시 50분 전에는 나와서 버스를 타야 늦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중고등학생에게 아침 6시에 일어나는 것은 얼마나 큰 고역인지 모릅니다.

아침에 일어나려고 하면 천근만근이고 그러다보면 몸에는 한계가 생기고, 몸이 피로하니 쉽게 짜증은 몰려옵니다.

아침에 짜증은 이 세상에서 나만 죽을 것 같이 힘든 것처럼 느껴지게 시야를 좁게 만들죠.

그러면 결국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들을 찔러댑니다.
저도 중고등학교때 아침마다 학교가기전에 엄마아빠에게 엄청난 짜증을 냈던 기억이 나는데요.

그런 기억을 떠올리면서 다음의 시를 감상했습니다.

엄마, 우정은

엄마
-우정은

월요일 아침
엄마가 어제 교복을 늦게 빨아서
아직 축축하다.
빨리 나가야 하는데
드라이기로 교복을 말리면서 시간을 뺏겼다.
투덜거리며 신발을 신었다.
그러자 엄마가
“또 나를 괴롭히냐? 엄마가 좀 나았냐?"
문을 거칠게 열고
평소에 꼬박 하던 '다녀오겠습니다' 소리도
빼먹고 나왔다.
아차, 엄마가 아프다는 걸,
역류성 위염을 앓고 있다는 걸,
어젯밤에도 화장실에서 토를 했다는 사실을
또 잊고 있었다.
내가 나간 뒤
기침을 하고 있을 엄마 생각하며 걸었다.

월요일 아침은 특히나 차가 막히기에, 그리고 일요일까지 편안하게 지내다 다시 등교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쉬이 짜증이 몰려오죠.

그러다보니 엄마에게 짜증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러한 짜증은 얼마 안가서 후회로 바뀌게 되죠. 그런 감정의 변화를 잘 드러낸 우정은 학생의 작품 엄마입니다.

엄마, 하선주
엄마
-하선주

아침에 바삐 학교 갈 준비하다가
책상 위에 두었던 학생증이 없어져서
엄마가 또 물건 치울 때 없어졌다 생각하고
엄마한테 학생증 어디 갔냐고 따졌다.
학교와 집 거리가 먼 데다
늦잠까지 자서
엄마한테 신경질을 내고 집을 나왔다.
지금 바로 가도 이미 지각이라
한숨 쉬면서 길을 걷는데
주머니에 뭘 넣은 적도 없는데 묵직하다.
손을 넣어 보니
학생증이 나왔다.



여기 동일한 제목의 엄마라는 시가 있습니다. 하선주 학생의 시인데요.

아침에 등교를 해야 하는데, 갖고 가야하는 학생증이 안보입니다.

이 시기 학생들은 으레 남탓하기 쉽죠. 특히 이런 물건들은 본인이 간수하지 못해서 잃어버리고, 찾지 못하는데 그 짜증은 모두 남에게 돌려버립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시의 화자 역시 엄마 탓을 합니다.
등교 전 온갖 짜증과 신경질을 부리고, 학교로 가는 길.
주머니 속에서 학생증을 찾고야 마는 화자.

차라리 찾지나 말걸.

이렇게 미안한 마음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몰려옵니다.

차 안에서, 김민수

차 안에서
-김민수

등굣길 아버지 차 안에서
나는 잠이 덜 깬 채 옆자리에 앉았다.
늘 듣는 아버지 말씀
"공부 잘돼 가고 있니?"
"뭐가 부족한 게 있니?"
아버지 말이 거슬리고 짜증이 났다.
"제발 잔소리 좀 그만하세요!"
"항상 하는 그 말 지겨워요!"
나도 모르게 버럭 튀어나와 버렸다.
차 안은 정적이 흐른다.
내가 지금 뭐 한 거지.
아버지한테 왜 그랬지.
속마음을 숨기려고
내 목소리는 점점 커져 간다.
차 안은 내 목소리로 꽉 찼다.
아버지 목소리도 점점 커져 간다.
차 안 분위기는 내 속마음과는 반대로 흐른다.


이번에는 등굣길 아빠에게 짜증을 부립니다.
저도 중고등학교때 아빠 차를 많이 얻어탔던 기억이 나는데요.

그 당시 아빠차는 멋진 세단도 아니고 SUV도 아니었습니다.

봉고차였죠.

봉고차를 타고 가끔 학교에 가는 제 모습이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봉고차 앞자리에 앉았지만, 혹여 누가 볼까 항상 자는 척하면서 최대한 몸을 낮추고 숨겼습니다.

혹여나 누군가, 내가 봉고차에 타고 있는 모습을 볼까봐요.

당연히 학교 정문앞에서 내리지도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멀찌감치 내렸죠. 그때는 왜 그리 어렸는지.

한없이 어리기만 했던 저의 중고등학교 아버지와 등굣길이 떠오르는 김민수 학생의 작품 "차 안에서"였습니다.

할머니, 조현홍
할머니
-조현홍

아침에 6시 30분에 일어나야
간당간당하게 지각을 안 할 수 있다.
오늘 할머니가 늦게 깨웠다.
너무 짜증났다.
일단 씻어야 되니
말없이 화장실에 들어갔다.
근데 점점 더 짜증이 나서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소리를 질렀다.
"할머니, 왜 늦게 깨웠어요?"
할머니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니가 너무 피곤해 보이길래
더 재우고 싶어서."


끝으로 등교 전, 등굣길을 앞두고 짜증내고 미안해하는 감정을 살펴볼 시는 조현홍 학생의 "할머니"입니다.

저는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적은 없어서, 할머니에게 이렇게 짜증냈던 적은 없습니다만,
아마 이 글을 보는 대부분의 분들은 어릴적 왜 늦게 깨었냐며 가족에게 짜증냈던 경험이 한 번씩은 꼭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진데요.

제 자녀들도 커서 저에게 이렇게 짜증을 부릴 것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

그래도 부모이기에 이해하고, 참아야겠죠.

이러한 부산연제고 학생들의 학생시 작품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부모나 가족에게 짜증내는 것은 그리고 미안해하는 것은 세대와 지역을 넘어서 공통적인 현상이구나라는 것입니다.

동시에 제가 어릴 때 부모님에게 짜증냈던 것들을 사과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으면서, 자녀들이 저에게 짜증내는 것도 조금 더 참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부모나 조부모의 사랑은 한량없이 깊고 넓음을 다시금 생각합니다. 더하여 지금 돌이켜보면 저는 부모로서 많이 부족하다 싶습니다.

부산 연제고 학생들이 쓴 시를 읽으며 저를 돌아봅니다.


펼침막, 한동혁
펼침막
-한동혁

서울대에 가지 못한 선배들은 잊혀졌는데
서울대에 들어간 선배는
우리 학교 교문 위에서
아직도 자랑스레 펄럭인다.
언제까지 우려먹을까.



30년전이나 20년전이나 10년전이나 그리고 지금이나 고등학교 정문을 지나가면 무수한 현수막을 보게 됩니다.

바로 대학 입학을 몇명이나 했는가라는 내용인데요.
왜 시간이 지나도 이러한 학벌위주의 시대는 변치 않을까요?

한동혁 학생의 "펼침막"이라는 시를 보면서 점차 더 공고해져만 가는 듯한 학벌주의를 다시금 생각합니다.

반응형
자유, 김진우
자유
-김진우
나는 1인 게임 개발자가 꿈이다.
게임을 개발하려면
기획 아트 프로그래밍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아트만 모른다.
고민하다 게임 학원을 다니기로 했다.
기초 드로잉부터 시작했다.
강사가 이렇게 말했다.
"가슴은 B컵 이상으로
상반신은 앞으로 빼고
엉덩이는 크게 하고 뒤로 빼라."
이것은 분명 게임 회사가 좋아할 디자인이다.
오직 수익을 위해 디자인하는 듯 보였다.
사흘 만에 게임 학원을 그만두고
독학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마음껏 상상력을 펼치면서 디자인하고
그저 플레이어가 즐기고 행복해하면 만족한다.
나는 회사가 아니다.


부산연제고등학교는 인문계일텐데요. 자유라는 시를 쓴 김지우 학생 혹은 자유라는 시 속에 등장하는 화자는 인문계고인 부산연제고를 다니면서도, 대학 입학을 꿈으로 갖고 있지 않습니다.

1인 개발자를 꿈꾸고 있는데요.

그런데 막상 연제고라는 인문계고를 다니면서 1인 게임 개발자라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는 쉽지 않아보입니다.

한국에서도 스타듀 밸리와 같은 인기있는 1인 게임 개발이 가능할까요?

"자유"라는 시를 보면 결코 쉽지 않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러한 어려움 가운데에도 노력하는 김지우 학생의 고군분투, 그리고 자본주의 상업성에 물들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용기있게 공부하는 화자의 노력을 보면서, 언젠가 이 꿈을 꼭 이루었으면 하는 응원의 마음이 듭니다.


친구, 정정모
친구
-정정모
내 친구 채언이는
우리 집 5층 위에 산다.
아침마다 만나서 같이 학교로 간다.
그런데 채언이는 시간을 어기고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약속 어기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기에
아침마다 화가 난다.
그래도 평생 볼 친구이기에
오늘도 아무 말 없이
같이 담배 한 대 피고
학교로 왔다.


<생긴 대로 살아야지> 시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살펴 볼 작품은 바로 정정모 학생의 친구입니다.

매일 늦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친구에게 서운한 마음과 분노를 느끼는 화자의 감정이 잘 드러나있는데요.

특히 마지막에 담배 한 대 피고 학교로 왔다는 행을 읽으면서 진짜 친구 찐친(?)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생긴 대로 살아야지> 시집을 보면, 이러한 일탈(?)의 행동이 많이 나옵니다.

담배를 피고, 야자를 째고, 당구장에 가고, 선생님을 너, 야, 걔라고 부르며 비판하고, 여러가지 쌍욕도 나오고요.

분명 수업시간에 구자행선생님과 함께 쓴 작품일텐데 이러한 내용을 학생들이 시로 표현했다는 점이 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이러한 자유로움은 학생으로 하여금 시를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오늘은  부산 연제고 학생들이 쓴 시집 <생긴 대로 살아야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이 시를 쓴 학생들은 지금은 모두 20대 후반에 접어들었을 것입니다.
과연 이 시집의 시를 수록한 수많은 학생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까요?

너무나도 궁금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시인과 화자는 분리해야겠지요.

시인과 화자를 동일시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면 안됩니다.

<생긴 대로 살아야지> 속에 자신의 작품을 수록한 수많은 학생시인의 오늘을 응원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반응형

댓글

💲 추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