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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 리뷰(feat. 비건으로 살고 싶게 만드는 책)

동사힐 2022. 9. 29.

최근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를 읽었습니다.


최근 한빛비즈 리더스클럽 8기 두번째 미션 도서로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를 선택해서 읽었습니다.
동물의 역사를 소재로 하는 만화이기에 부담없이 선택을 했습니다.

&lt;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gt; 앞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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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막상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를 읽고보니, 결코 편치 않은 책이었습니다.

동물의 역사를 통해 인간의 역사를 돌아보고, 동시에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끝도 없는지를 책을 읽는 내내 반추하였습니다.

특히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의 그림체는 만화적 과장이나 위트보다는 얼마나 자세하고 생생하게 묘사하는가에 중점을 두고 있기에, 인간에게 오랜 시간 고통받았던 동물의 아픔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도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를 읽는 내내 마음이 힘들었는데요.

다행히도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는 상당히 철학적이고 복잡한 내용을 매우 쉽고 명확하게 묘사하였기에, 인간과 동물의 지난 오랜 세월 간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그동안 제가 동물의 권리나 복지 등에 관해서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통렬히 반성했습니다.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는 불편한 만큼 유익한 책이며, 동시에 앞으로 동물과 공존하며 살아갈 제 가치관을 정립해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를 살펴보기 전에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기억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동물의 역사로 인간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lt;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gt;

털이 완전히 뽑혀 불에 그슬린 채로 거꾸로 묶여 있던 '그것'이 생각났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5년전입니다.
국민학교 2학년, 방학을 맞이해서 할머니댁에 갔습니다.

시골의 사촌들과 이곳저곳 산과 들, 논밭을 거닐며 하루종일 놀았던, 제 나이또래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그런 유년의 기억.

그 기억 가운데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마을 어귀에 큰 나무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나무 옆에는 공터가 있었고, 평상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날은 마을 잔치를 하는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커다란 솥에 뜨거운 물이 팔팔 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언가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습니다.
어느 아저씨가 몽둥이를 갖고 매달린 물체를 열심히 때렸습니다.

어린 마음에,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 물체는 검붉었는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어린 제 눈에 선명하게 그 물체가 보였습니다.

나무에 매달린 물체는 축 늘어진 개였습니다.
개는, 더이상 개의 형상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털은 완전히 뽑혀있었으며, 뒷다리가 모아져서 줄에 묶여서 나무에 매달렸습니다.

그 개는 불에 군데군데 그을려 있었습니다.
더이상 살아있지 않은 개, 그런데 그 아저씨는 계속 그 개를 몽둥이로 때렸습니다.

왜 죽은 개를 계속해서 때릴까요?

그 어린 나이에 보았던 개를 잡는 모습은 참혹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저와 사촌들 그리고 동네의 여러 아이들은 뒷걸음질쳤습니다.

그렇게 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개가 죽은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때 그 개가 무엇을 위해서 불에 그을리고, 떨은 다 뽑히고, 몽둥이로 계속해서 맞았는지 그때도 지금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개가 보신탕이라는 식용을 위한 재료로 쓰인다는 것은 국민학교 2학년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그 장면을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저 뒷걸음질만 칠 뿐입니다.

그런데 개 한 마리가 보신탕이 되기 위해서, 식용의 재료로써 쓰이는 것은 지금도 전세계적으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꽤 오래전부터 한국이 보신탕과 개고기에 관해서 수많은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어김없이 비판하는 문제 중 하나죠.

그런데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를 읽으면서 식용 개고기보다 더 끔찍하고 잔인한 동물 대량학살이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를 보면서, 지금도 어김없이 식재료가 되기 위해 죽어가는 동물을 떠올리면, 그저 무기력과 절망감만 차오릅니다.

마치 제가 국민학교 2학년때 나무에 매달려 죽은 개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처럼 말이죠.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는 불편합니다.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를 읽고 느낀 감정을 단적으로 표현하면 불편하다였습니다.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어쩌면 외면하고 살았던 수많은 동물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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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의 "동물과 19세기 혁명들" 챕터에서 산업화와 대량 생산 가운데 마치 기계의 부품처럼 마구잡이로 대해지는 내용은 불편함을 넘어, 극도의 불쾌감으로 다가왔습니다.

돼지는 5초마다 한 마리씩 처리된다. 마치 자동차처럼 돼지는 식료품으로 가공된다.
사육은 서서히 동물의 몸으로부터 동물성 재료를 생산하는 산업 활동이 되며, 그 유일한 목표는 이윤 추구이다. 광산에서 석탄을 채굴하듯 소에서 고기를 추출한다. 식품가공업계는 간 고기를 제조하는 데 사용하는 절단된 고기를 '광석'이라 부르기도 한다.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 94쪽


이렇게 산업의 일부분이 된 동물은 효율을 위해서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됩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도축 유통센터인 시카고의 도축장에서 연속 공정 노동이 처음 만들어진다. 몇 년 후에 헨리포드가 자동차 산업의 조립 라인에 이 방식을 적용한다.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96쪽



이렇게 거리낌없이 동물을 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의 "계몽 시대의 그늘 아래" 챕터를 보면 이해할 수 있는데요.

동물을 도구로 바라보는 인식이 계몽주의가 지배하던 시기에 정립되었기 때문입니다.

동물의 고통을 외면하며 이루어진 계몽주의 시대의 수많은 실험들


연구자는 과학이 동물을 활용할 권리를 정당화하려고 자신이 동물과 닮았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이처럼 아이러니하지만, 철저히 인간적 관점으로 동물을 바라보는 인식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실험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인간과 동물의 비슷함을 주장하지!



위 내용은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 83쪽에 나오는 동물 실험에 관한 역설 아이러니입니다. 인간은 동물 실험을 정당화하기 위해 동물을 대상화하고, 인간과 동물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동시에 동물로부터 얻은 실험 결과의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동물과 인간의 공통점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인간과 동물의 역사 가운데 반복되고 지속되었습니다.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는 동물이 인간과 다르지 않음을 역설합니다.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를 보면 동물도 인간처럼 고통을 똑같이 느낀다고 말합니다.

동물도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느끼며 우울을 경험한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한 사고와 언어 역시 동물도 동일하게 할 수 있음을 뜻합니다.

동물도 언어의 통사 구조를 활용한다.

게다가 인간이 겪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의 해답도 동물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인간은 오랜 역사 가운데 동물에게 수많은 도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동물을 무시하는지 반문합니다.

동물도 지능, 의식, 감정, 문화, 언어를 가지고 있다



그동안 동물로부터 큰 도움을 받은 것처럼 이제는 인간이 동물을 위해 나서야 할 때라고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는 주장합니다.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는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는 말합니다. 이렇게 동물을 도구로 바라보는 인식으로 인해서 지금 우리가 겪는 전지구적인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고요.

특히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의 "21세기 동물" 챕터를 보면 육류 대량생산을 통해 기후 온난화와 같은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육류 대량생산은 수많은 문제를 야기시킨다.



이러한 끔찍한 상황들이 지속된다면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의 에필로그에서 등장하는 인류 최후의 결말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를 읽고 비건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에서는 위와 같은 끔찍한 결말만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결말도 제시하고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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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결말을 보면서, 비건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거니즘은 인류 생존을 위한 운동이다.


그러나 지난 40년간 어떠한 죄책감없이 동물을 소비했던 삶의 행태를 바꾼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당장 바꿀 수 있는 사소하고 작은 것부터 노력해야 할텐데요.

대표적으로 동물성 우유 대신 오트밀크를 마시는 것이죠.
소고기와 같은 육류의 소비도 줄여할 것입니다.
콩등으로 만든 식물성 스테이크로 소고기를 대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완전한 비건으로 살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을 읽으면서 비건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됩니다.

세상을 바꾸려면 더이상 동물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동물과 인간은 언제나 서로 연결되어 있고 결코 분리될 수 없었어. 성숙하지 못한 인간이 그 사실을 잊은거야. 이제는 더이상 외면할 수 없겠지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169쪽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를 통해 더이상 외면할 수 없는 인간과 동물의 진실을 용기있게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동물의 역사를 통해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고, 앞으로 나와 동물의 관계를 생각함으로써 비건에 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는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를 한번쯤 꼭 읽어보시길 권유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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