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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리뷰(feat. 세상 끝 등대 같은 시집)

동사힐 2022. 9. 2.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오랜만에 다시 읽었습니다.


2012년 12월에 발매되어, 시집 베스트셀러를 넘어 지금까지도 꾸준한 스테디셀러인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오랜만에 읽었습니다.

이 시집은 저에게 세상 끝 등대 같이 소중한 작품입니다. 오늘은 저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최애 시집 중 하나인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리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준 시인의 첫 시집인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다음 신문 기사의 내용을 통해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박준(38)은 문학적 평가와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누리는 드문 시인이다.

2012년 펴낸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지난달 50쇄를 돌파했다.

2000년 이후 데뷔한 밀레니얼 세대 작가로선 처음이다. 누적 판매 부수도 16만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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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기사는 2021년 경향신문에서 나온 기사의 일부를 인용한 것인데요. 박준 시인은 2008년에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이후에, 2012년에 첫 시집<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을 출간했습니다.

시집이 출간되자마자 문학계에서도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구요.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으며, 드라마 같은 다양한 미디어에 노출되면서 더욱더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2000년 이후에 등장한 MZ세대 작가 중 10만부 이상을 팔게 된 매우 드물고 희귀한 작가가 되었고, 2021년에는 무려 50쇄를 돌파했습니다.

올해로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출간한지 10년째 되는 해인데, 지금도 각종 서점의 시집 스테디셀러에 보면 꾸준히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대단한 시인의 엄청난 시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을 2017년에 구입을 했는데, 이때는 30쇄였습니다. 5년만에 30쇄가 출간된 것이었고, 그로부터 4년 뒤에 추가로 20쇄가 출간되었습니다.

이러한 속도라면 올해 2022년 12월 5일이면 출간한지 만으로 10주년이 되는데, 박준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시집 10주년 이벤트를 해볼만 하고, 60쇄에서 70쇄까지도 출간해볼만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소망도 있습니다.

그정도로 꾸준한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박준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의 매력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지난 2018년 겨울에 박준 시인의 특강을 들은 적이 있는데요. 그때 만난 박준 시인은 동네 형 같은 친숙한 이미지로 다가왔습니다.

강연을 통해 박준 시인은 자신의 일기쓰기 일화와 민통선 너머 하얀 꽃 이야기 일화 등을 들려주면서, 누구나 글을 써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요. 아마도 그때 박준 시인의 강연을 통해 저도 용기내서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박준 시인은 저와 사진도 찍고, 간단한 사인도 해주었는데요. 그때 제게 남겨준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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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철 머무는 마음에게


사인도 이렇게 시적이니, 어찌 제가 박준 시인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박준 시인은 시인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의 많은 시인처럼 본업이 시인은 아닙니다.

쉽게 말해서 시만 쓰면서 먹고 살기는 어려운 거죠. 그러다보니 박준 시인은 출판사 편집일도 함께 하는데요. 아무래도 시인으로서 살아가면서 동시에 편집자로서 살아가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 박준 시인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의 서문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깁니다.

나도 당신처럼 한번 아름다워보자고 시작한 일이 이렇게나 멀리 흘렀다.


아마도 여기에서 "아름다워보자고 시작한 일"은 시를 쓰는 것을 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08년 이후 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2012년에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발간했으니까요.

내가 살아 있어서 만날 수 없는 당신이 저 세상에 살고 있다.


여기서 당신은 누구일까요? 시인은 살아있기에 만날 수 없는, 저 세상에 살고 있는 당신이 있습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은 무언가의 이유로 이 세상에 살고 있지는 않은 듯 싶습니다.

물론 이 세상에도 두엇쯤 당신이 있다.


이 구절을 통해서 당신은 한 명을 지칭하면서도 동시에 불특정 다수가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당신에게 시인 박준은 사과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를 통해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당신’에게 미안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표현한 시집임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박준 시인을 21세기 백석의 후예라고 생각합니다. 박준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백석 시인이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산문으로 등단했던 백석, 한국 근대문학 사상 최고의 모더니스트이면서도 향토성을 살려낸 백석 시인. 동시에 누구보다 감각적으로 아픔을 묘사한 산문시의 대가.

물론 박준은 박준이고, 백석은 백석이겠지만 - 백석 시인의 영향을 박준 시인이 강하게 받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실 한국현대문학에서 백석의 영향을 받지 않은 시인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게다가 박준은 첫번째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의 성공 이후로 두번째 시집을 바로 내지 않고 (박준의 두번째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는 2018년에 나왔습니다)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를 먼저 내고,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에 버금가는 대흥행을 한 것을 보면 사실 박준의 글에는 산문가 백석의 그림자를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혹자는 박준은 미디어의 영향을 상당히 강하게 받은 작가라고 폄하하기도 합니다. 마치 공지영 작가가 한때 얼굴로 책 팔아먹는다는 혹평을 들었던 것처럼요.

그럴만도 한 것이, 박준의 책들은 드라마나 예능에서도 여러번 소개가 되었고, 게다가 박준 시인 본인이 상당한 인기와 영향력을 보유한 예능 <유퀴즈온더블럭> 2021년 5월 12일 107회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유퀴즈온더블럭>과 같은 인기 프로그램에 출연을 하면 덩달아 포털 검색량이 늘면서 책판매량도 다시 늘어나게 되기 마련이죠.

하지만 실력이 없고, 작품성이 없다면 이러한 방송버프는 오래 가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에서 박준 시인이 단순히 2021년 5월 12일 107회에 출연해서 많은 책을 팔고 인기와 관심을 받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본업존잘


바로 박준 시인은 누구보다 “본업존잘” 즉 어릴적부터 꾸준한 일기쓰기로 단련된 글쓰기 실력을 바탕으로 본업인 시를 잘 쓰기 때문에 지금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박준 시인의 첫시집이자 지금까지도 지속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속 시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에서 인상적인 작품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함께 읽어볼 시는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시집의 제목이 된 시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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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여기서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 시를 읽으면 도대체 이름을 지어다가 먹는다는 뜻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보통 지어다가라는 단어은 약을 지을때 많이 쓰는데요. 실제로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에는 이러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아픈” 내가


시의 화자 역시 아픕니다. 아픔은 이 시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정서인데요. 당신도 아프지만, 나도 아픕니다. 함께 아픔을 공감하는거죠. 동병상련처럼요.

그러니 화자는 마치 아플때 지어먹는 약처럼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는 것입니다.

물론 자서전을 대신 쓰면서 이름으로 대변되는 당신의 이야기를 지어서(가공해서) 밥을 벌어먹는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 사실 저는 처음에 이렇게 해석했습니다만 - 자서전 속 당신처럼 나도 함께 아프다는 공감과 함께, 당신의 삶이 나에게 약이 된다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와 같은 시들이 이 시대를 아프게 살아가는 무수히 많은 당신에게 약과 같은 위로를 줍니다.


용산 가는 길 -청파동 1

청파동에서 그대는 햇빛만 못하다 나는 매일 병(病)을 얻었지만 이마가 더럽혀질 만큼 깊지는 않았다 신열도 오래되면 적막이 되었다 빛은 적막으로 드나들고 바람도 먼지도 나도 그 길을 따라 걸어나왔다 청파동에서 한 마장 정도 가면 불에 타 죽은 친구가 살던 집이 나오고 선지를 잘하는 식당이 있고 어린 아가씨가 약을 지어준다는 약방도 하나 있다 그러면 나는 친구를 죽인 사람을 찾아가 패(悖)를 좀 부리다 오고 싶기도 하고 잔술을 마실까 하는 마음도 들고 어린 아가씨의 흰 손에 맥이나 한번 잡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지는 해를 따라서 돌아가던 중에는 그대가 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 그대도 나를 떠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파서 그대가 아프지 않았다

"용산 가는 길"은 청파동 연작 중 하나인데요. 제가 청파동에 살았다보니 이 시는 제게 특히 공감이 되었습니다.

이 시를 보면, 백석의 영향을 박준이 많이 받지 않았나 싶은데요. 산문형식도 형식이지만, 맥이나 한 번 잡혀보고 싶어하는 화자의 고백은 백석의 고향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청파동에서 한 마장 정도 가면 불에 타 죽은 친구가 살던 집


청파동에서 한 마장은 어디일까요? 마장은 오 리나 십 리가 못되는 거리를 이를 때 쓰는 말인데요.

보통 십 리가 4km이기에 한 마장은 길어야 2-4km이내의 거리입니다. 청파동 주민센터에서 용산역까지 약 2km정도이니 청파동에서 한 마장은 용산을 지칭하는 것이 확실함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제목만 봐도 용산인지 우리는 알 수 있는데요. 여기서 하나 더 바로 “불에 타 죽은 친구가 살던 집”을 통해 용산이라는 사실을 확증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 있었던 용산참사인데요. 그때 철거를 위해서 과도한 무력진압이 있었고 결국 철거민은 불에 타는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실제로 용산참사 이후 시위 현장에 박준 시인은 여러 번 가보았다고도 인터뷰에서 말을 했는데요.

벌써 10여년도 넘게 지난 용산참사의 가슴 아픈 기억을 이렇게라도 기록하고 기억하게 하는 시입니다.

 

그대가 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 그대도 나를 떠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구절은 "용산 가는 길"에서 눈길을 끄는 구절인데요. 조사 '가'와 '도'의 대비를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주격조사 '가' 대신에 보조사 '도'를 사용함으로써 섬세하게 화자의 의미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먼저 주격조사 '가'의 사전적 의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 어떤 상태를 보이는 대상이나 일정한 상태나 상황을 겪는 경험주 또는 일정한 동작의 주체임을 나타내는 격 조사. 문법적으로는 앞말이 서술어와 호응하는 주어임을 나타낸다.

: “누가 이 시를 썼느냐?” “언니가 썼습니다.”

2. ((‘되다’, ‘아니다’ 앞에 쓰여)) 바뀌게 되는 대상이나 부정(否定)하는 대상임을 나타내는 격 조사. 문법적으로는 앞말이 보어임을 나타낸다. 바뀌게 되는 대상을 나타낼 때는 대체로 조사 ‘로’로 바뀔 수 있다.

: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었다.

 

다음은 보조사 '도'의 사전적 의미입니다.

1. 이미 어떤 것이 포함되고 그 위에 더함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 나도 이제 늙었나 보다.

2. ((주로 ‘…도 …도’ 구성으로 쓰여)) 둘 이상의 대상이나 사태를 똑같이 아우름을 나타내는 보조사.

: 아기가 눈도 코도 다 예쁘다.

3. 양보하여도 마찬가지로 허용됨을 나타내는 보조사.

: 찬밥도 좋으니 빨리만 먹게 해 주세요.

4. 극단적인 경우까지 양보하여, 다른 경우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이 그러하다는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해라.

5. 보통이 아니거나 의외의 경우에, 예외성이나 의외성을 강조하는 데 쓰이는 보조사.

: 집 앞까지 갔다가도 그냥 왔지요.

6. 놀라움이나 감탄, 실망 따위의 감정을 강조하는 데 쓰이는 보조사.

: 달도 밝다!

 

위 시에서 보조사 '도'는 1번 의미인 '이미 어떤 것이 포함되고 그 위에 더함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로 쓰인 것처럼 해석되는데요. 결국화자인 '나'를 떠난 사람이 '그대'뿐만 아니라 이전에도 여럿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앞에서 제가 언급한 시인의 말과도 연결되는 지점입니다. 

 

 

물론 이 세상에도 두엇쯤 당신이 있다.

 

다시 한번 보면, 이미 저세상을 떠난 당신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도 두엇쯤 당신이 있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는데요. 화자에게 '그대'도 '당신'도 모두 하나가 아니라 여럿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나도, 당신도, 그대도, 모두가 아픔을 겪은 존재라는 것을 시를 통해서 우리는 알게 됩니다. 이렇게 공감과 연민으로 묶이기에 이 시는 다음 구절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습니다.

 

 

내가 아파서 그대가 아프지 않았다

 


2:8 -청파동 2

밤이 오래된 마을의 가르마를 타 보이고 있다 청파동의 밤, 열에 둘은 가로등 열에 여덟은 창문이다 빛을 쐬면서 열흘에 이틀은 아프고 팔 일은 앓았다 두 번쯤 울고 여덟 번 쯤 누울 자리를 봐두었다 열에 둘은 잔정이 남아 있었다 또 내가 청파동에서 독거온실이니 근황이니 했던 말들은 열에 여덟이 거짓이었다 이곳에서는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당신이 보고 있을 내 모습이 보인다 새실새실 웃다가도 괜히 슬프고 서러운 일들을 떠올리는 모습이 둘 다시 당신을 생각해 웃다가 여전히 슬프고 서러운 일들을 떠올리는 모습이 여덟이었다 남은 청파동 사람들이 막을 떠나가고 있었다 이제 열에 둘은 폐가고 열에 여덟은 폐허였다

 

두번째 청파동 연작시인 2:8입니다. 이 시에서 2:8은 다음과 같은 구절로 반복적으로 변주해서 등장합니다.

열에 둘은, 열에 여덟은
열흘에 이틀은, 팔 일은
두번 쯤, 여덟 번 쯤
모습이 둘, 모습이 여덟

2:8을 하니 파레토의 법칙이 떠오르는데요. 파레토의 법칙을 이 시에서는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제는 저물어가는 청파동의 풍경이 감각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사실 청파동은 이제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이 되어서 2012년 시집이 출간되었을때보다 2022년 지금이 더 황폐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청파동 재개발 지역의 철거가 완전히 진행되고, 새로운 아파트가 무수하게 들어서면 또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입니다.

 

그날이 오면 과연 청파동 연작시의 느낌은 어떻게 다가올까요? 재개발이 진행되면 완전히 달라지는 마을의 모습을 볼 때마다 다시한번 아파트공화국 대한민국의 현실을 체감하는데요. 청파동 연작뿐만 아니라 청파동을 배경으로 하는 <불편한 편의점>과 같은 또다른 문학작품들이 이제는 완전히 사라질 청파동의 옛모습을 글로 남기고 있습니다.

 

이제는 박준 시인의 2:8 청파동 연작시는 폐가와 폐허로만 남은 청파동 재개발 지역을 기억하는 시로, 그리고 저의 20대 청춘을 청파동 햇볕하나 들어오지 않은 삼면이 막힌 반지하 빌라에서 보내던 삶을 떠올리게 하는 시입니다.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그전에 자랑거리가 이제는 자랑이 되지 않지만,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음을 노래하는 시입니다.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를 읽으면서 무수한 밤, 눈물을 곱씹고 슬픔을 참아내기도 했는데요.

특히 눈에 눈물이 고이는 모습을 이렇게도 아름답게 묘사한 시가 또있을까?하는 구절이 와닿기도 하는 시입니다.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그리고 최근 심각한 기후위기를 통해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집과 터전을 잃어가고 목숨과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데요.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10년전에 발표된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를 다시 읽으면서 예전에는 생각못했던 기후위기도 함께 떠올립니다.


환절기

나는 통영에 가서야 뱃사람들은 바닷길을 외울 때 앞이 아니라 배가 지나온 뒤의 광경을 기억한다는 사실, 그리고 당신의 무릎이 아주 차갑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비린 것을 먹지 못하는 당신 손을 잡고 시장을 세 바퀴나 돌다보면 살만해지는 삶을 견디지 못하는 내 습관이나 황도를 백도라고 말하는 당신의 착각도 조금 누그러들었다

우리는 매번 끝을 보고서야 서로의 편을 들어주었고 끝물 과일들은 가난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입술부터 팔꿈치까지 과즙을 뚝뚝 흘리며 물복숭아를 먹는 당신, 나는 그 축농(蓄膿) 같은 장면을 넘기면서 우리가 같이 보낸 절기들을 줄줄 외워보았다

박준의 시 "환절기"에서 저는 다음 구절이 특히 가슴에 남는데요.

우리는 매번 끝을 보고서야 서로의 편을 들어주었고 끝물 과일들은 가난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이 구절을 읽으면 가난한 연인도 떠오르고, 가난한 모자지간도 떠오릅니다. 그리고 이제는 복숭아를 누구보다 좋아하는, 그리고 저와 끝까지 투닥거리는 제 둘째딸도 떠오르네요.

이렇게 예전에는 미처 생각치 못했던 다양한 감정들을 떠오르게 하는 시가 바로 "환절기"인데요. 요새 같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환절기에, 기후위기로 급격하게 달라지는 계절의 변화를 느끼면서 더더욱 생각이 납니다.

이 시의 배경은 통영인데요. 시인 백석처럼 박준의 작품에도 이처럼 통영이 종종 등장합니다. 저도 통영에 6번 이상 다녀왔을 정도로 좋아하는 곳인데요. 통영은 이렇게 수많은 문인들의 작품속에 등장하여 기록으로 남는 특별한 도시입니다.


 

세상 끝 등대 2

오늘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리뷰에서 마지막으로 살펴볼 시는 바로 "세상 끝 등대 2"입니다.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에서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시이기도 하고,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뒷표지에도 등장하는 이미지로도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세상 끝 등대 2"는 제목과 이미지, 그리고 숫자와 기호로만 이루어져 있는 작품입니다. 실제로 박준 시인은 이 작품을 시라 해도 좋을까?,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에 실어도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편집자와 협의 끝에 이와 같이 넣었다고 하는데요. 먼저 제목 "세상 끝 등대 2"에서 끝이라는 단어를 주목합니다.

"끝"은 시집<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시어입니다. 방금 살펴본 환절기에도 "끝"이 등장하는 것처럼요. 세상 끝에 있는 등대라면 잘 보이지 않지만, 희미한 빛으로 삶의 방향을 인도해주는 그런 존재처럼 느껴지는데요.

 

아마도 이 사진 속에 등장하는 분이 "세상 끝 등대" 같은 분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다음에 사진을 꼼꼼히 살펴봅니다. 

사진을 보니, 여성으로 추정되는 분의 뒷모습이 등장하는데요. 여성분께서 문을 열고 방에서 거실로 나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흑백 사진이라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드레스인지, 원피스인지 슬립인지 잘 구분이 안되는 옷을 입고 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 사진을 찍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뒷모습으로 인해 무언가 단절된 느낌을 받습니다.

 

사진 하단에 숫자가 있는데요.

1981~2008

 

4자리 숫자와 ~물결 표시가 함께 있습니다. 보통 일반적으로 이러한 숫자와 물결 표시는 언제 쓸까요?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출생연도와 사망연도를 표시할 때 많이 쓰죠. 아마도 사진 속 여성분은 1981년에 태어나서 2008년에 생을 마감한 것 같습니다.

사실 1981년에 태어나서 2008년에 생을 마감했다면, 28살이라는 짧으면 짧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치 불꽃같은 생애를 보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무슨 사연으로 세상을 떠났는지는 모릅니다. 조금더 박준 시인의 생애와 위 내용을 연결하면 다음의 내용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 박준 시인은 1983년 생으로, 사진 속 인물은 박준 시인보다 2살 연상이다.
  • 박준 시인이 등당한 해는 2008년이며, 사진 속 인물이 생을 마감한 해와 동일하다.

 

그런데 여기서 시인의 말이 떠오릅니다.

 

내가 살아 있어서 만날 수 없는 당신이 저 세상에 살고 있다.

 

"살아 있어서 만날 수 없는, 저 세상에 살고 있는 당신"은 혹시 사진 속 인물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처럼 아름다워지기 위해서 시를 쓰기 시작한 박준 시인의 말처럼, 사진 속 아름다운 인물은 박준 시인의 당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 사진 속 인물은 박준 시인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모르긴 몰라도 매우 소중하고 각별한 존재였을 것입니다.

 

 

 


 

이하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박준 시인은 특강에서 사진 속 인물은 바로 시인의 누나였다고 밝혔습니다. 젊은 시절 생을 마감하고, 저 세상으로 떠난 누나를 추모하는 시이면서 동시에 누나의 죽음을 계기로 시인으로 등단하게 된 박준 시인의 처음을 기억하는 시이기도 합니다.

 

저에게 박준 시인의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은 마치 이 혼탁한 세상의 끝 언저리에 우두커니 서있는 등대 같습니다. 2022년은 어쩌면 저에게 2012년보다 더 절망적이고 힘겨운데요. 

 

세상은 진보하다는 저의 믿음은 속절없이 깨져가며, 사람들은 더이상 타인의 슬픔과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은 순간 속에서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저에게 그럼에도 아직 세상 끝에 등대 같은 사람들이 있으니, 함께 울자고 저 세상 너머에서 손을 내미는 것 같습니다.

 

아직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시집을 읽어보진 않은 분이라면,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하며, 오늘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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