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가 되어도 출근은 해야 해> 리뷰(feat. 책 한 권이 주는 직장인에게 주는 소소한 울림)

한빛비즈에서 <벌레가 되어도 출근은 해야 해>를 출간했습니다.

---

지난 5월 2일에 한빛비즈에서 제목만으로도 눈길이 가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바로 <벌레가 되어도 출근은 해야 해>입니다. 저는 작년부터 리더스클럽으로 활동하기에 이 책을 누구보다 먼저 받아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택배로 책을 받자마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포장을 뜯었습니다. 표지를 보면서 앗! 하는 탄식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바로 카프카의 그 유명한 책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를 모티브로 하는 그림이 표지에 떡 하니 있었습니다. 설마 했는데 <벌레가 되어도 출근은 해야 해>의 벌레는 카프카의 <변신> 속 주인공 그레고리 잠자였던 것입니다. 

그레고리 잠자??

 

어느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침대에서 흉측한 모습의 한 마리 갑충으로 변한 것을 알아차렸다. -카프카, <변신> 첫 문장

 

너무나도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카프카의 <변신>은 무려 10년전에 읽었어도, 여전히 제 기억 속에는 생생한데요. 제가 <변신>을 너무나도 좋아하다보니, 이 책을 모티브로 하는 <벌레가 되어도 출근은 해야 해>를 어서 빨리 읽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받자마자 바로 읽기를 시작했고, 312쪽 분량이 되는 책을 딱 세 시간만에 모두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흡입력이 있으면서도, 책의 내용에 크게 공감하면서도 작가에게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신간이라 아직 읽어보시지 않은 분들이 많겠지만, 저처럼 남편이자 아빠로서 집안의 가장이라는 큰 짐을 지면서 동시에 직장 생활을 하는 독자라면 말로 표현하기 힘든 짠한 감정을 느끼실 거에요. 꼭 <벌레가 되어도 출근은 해야 해>를 읽어보시길 추천드려요. 이번 책 정말 좋아요. 저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부분에서 이 책이 큰 감동과 위로를 주었는지 하나씩 꼼꼼하게 살펴보겠습니다.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는 모든 직장인들에게 주는 작은 위로

---

먼저 이 책이 거짓 위로가 아닌 진짜 위로를 주는 이유는 바로 작가의 이력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저자이신 박윤진 작가님은 무려 23년차 회사원입니다. 23년동안 가늘고 길게 회사에서 하루하루를 버티어 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그런데 회사 생활뿐만 아니라 그 기나긴 경험을 바탕으로 이렇게 좋은 글을 써서 책까지 쓰시다니요. 존경을 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박윤진 작가님은 회사를 다니면서 박사과정까지 수료하셨다는 것입니다. 철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철학하는 50대는 미래가 두렵지 않다>를 출간까지 하셨습니다. 전문 작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문으로 철학 공부만 하는 것도 아닌 말그대로 회사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공부도 하고 글도 쓴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정말 모든 회사원이라면 격하게 공감할 것입니다. 박윤진 작가님의 수많은 시간 동안 노력해온 장면이 자연스럽게 그려집니다.  그리고 작가님의 이러한 경험들이 자연스럽게 녹아져서 이런 의미있는 글을 쓰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차장은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봤다. 이 우울감은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자신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은 깜빡이는 노란색 신호등처럼 속도를 늦추고 주변을 잘 살피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가속 페달을 더 힘껏 밟아 버렸다. 누군가 이런 자신을 보고 '이 차장, 괜찮아. 지금도 참 잘하고 있어', '이 차장, 당신 참 괜찮은 사람이야', '이 차장,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하고 말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별안간 이 차장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벌레가 되어도 출근은 해야 해>73쪽

 

승진 누락으로 우울감에 빠진 이차장의 내면을 묘사한 위 글을 읽으면서 마치 내 이야기만 같았습니다. 나의 동료와 후배들이 나를 제치고 올라갈 때, 나만 그 자리에 멈춰서 뒤쳐지는 것만 같을 때 느꼈던 그 감정들. 그때 누군가 나에게 다음의 말들을 해주길 간절히 바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 괜찮아. 지금도 참 잘하고 있어
• 당신 참 괜찮은 사람이야
•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그러나 누구도 나에게 저런 위로를 건네준 적이 없었고, 저는 3년이 넘는 시간을 우울하게 보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고, 저도 모르게 물컹하면서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3년이 넘는 시간을 우울하게 보내면서, 어려웠던 그 시절을 모두 극복했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저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 진 것이지 결코 이겨낸 것은 아니었음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감정을 나만 느낀 것이 아니라는 공감과 연대, 그리고 나의 감정을 작가님의 글을 통해서 객관화시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대학교 3학년때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면서 도대체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주인공 홀든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고졸 김 과장의 엔딩

 

고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하는 김 과장의 모습을 통해서, 삶의 문제는 작은 노력에서부터 해결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벌레가 되어도 출근은 해야 해>는 다양한 직장인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열두 권의 고전 명작을 세 시간만에 모두 읽는 지적 유희

---

<벌레가 되어도 출근은 해야 해>는 카프카의 <변신>으로 시작해, 보너스 책인 우스이 요시토의 <짱구는 못말려>로 끝이 나는데요. 총 열두 권의 고전 명작을 지금여기 우리의 삶과 연결하여 풀어냅니다. 그래서 고전 명작이 저기 멀리 우리의 삶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여기의 우리 삶의 모습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깨닫게 만듭니다.

열두 권의 고전 명작을 한 권으로 읽는다

 

• 프란츠 카프카 <변신>
• 장 폴 사르트르 <닫힌 방>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 윌리엄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 허먼 멜빌 <모비딕>
•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 장하준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 헤르만 헤세 <데미안>
• 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물론 마이클 샌델 교수나 장하준 교수의 책은 고전이라고 불리기는 어려워도, 명작이라고는 충분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 권도 제대로 읽기 어려운 책을 박윤진 작가님의 글로 쉽고 재밌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동시에 위의 책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독자라면, 아마도 <벌레가 되어도 출근은 해야 해>를 읽고 나서 원작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 책을 모두 읽는 데 세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이 책을 모두 읽고나면 마치 고전 명작 열두 권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고전 명작과 지금의 삶을 모두 자연스럽게 하나로 연결을 하는데요. 예를 들면 마이클샌델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공공의대 이야기를 꺼내고, 지잡대 이야기를 꺼내고, 스카이캐슬, 2019년 미국 명문대 부정입학 스캔들, 플라톤의 국가, 환경미화원의 죽음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호텍스트성을 통하여 독자는 자연스럽게 원작의 의미를 깊이 있게 이해하면서,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인식의 전환 : 삶과 죽음의 이분법을 이진법으로

---

삶의 이유가 사라졌을 때, 인간은 죽음을 느끼며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나 분명한 삶의 이유와 의미가 있으면 삶과 죽음의 이분법을 넘어 당당하게 입을 열 수 있다. 자신이 선택한 삶의 이유와 의미의 최후 증언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삶과 죽음의 이분법을,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한 이진법으로 바꿨다. 컴퓨터의 0과 1이 수많은 파일과 영상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인간의 삶과 죽음이 수많은 의미와 이야기를 만들어낼 거라 생각했다. 삶과 죽음의 이진법이 내게 준 첫 이야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벌레가 되어도 출근은 해야 해>293쪽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와!하고 절로 탄식이 쏟아졌습니다. 제가 최근에 읽은 글 중에서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보여준 글은 단언코 없었습니다. 그만큼 저에게는 놀랍게 느껴졌는데요. 위 내용은 갑질하는 회사의 신입사원 백사원 이야기에서 나옵니다. 백사원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신입사원인 백사원은 철학과를 졸업하고 취업을 합니다. 취업을 하자마자 "ESG 경영전략의 철학적 접근과 적용"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맡게 됩니다. ESG가 뭔지 잘 모르는 백사원은 수소문 끝에 ESG 전문가인 철학 박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냅니다. ESG 전문가는 백사원에게 선문답 같은 내용의 답장을 보냅니다.

회사의 홈페이지 미션과 비전이 홈페이지에만 머문다면 불행한 일이 반복될 것입니다. (중략) 전략이란 말은 생존을 최우선 가치로 만들어버립니다.

이메일을 읽은 백사원의 귓가에는 "수치스럽지 않습니까?"하고 책망하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귓가에 맴돕니다. 결국 백사원은 ESG 경영을 위해서 다음의 결론을 내립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대리점주들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듣는 것!

 

그렇게 백사원은 삶과 죽음의 이분법을 이진법으로 전환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삶을 살아냅니다. 그런 백사원의 모습이 저에게는 큰 감동이 되었습니다. 현실에서는 소시민인 제가 과연 백사원처럼 용기있는 삶을 살아낼 자신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삶과 죽음을 수많은 의미와 이야기로 가득한 이진법으로 바꿔낼 수 있다면 저의 삶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때문입니다.

 

남자의 주식, 바이오 테마주 마이너스67.5%

---

지독하지만 버텨야 하는 회사

양대리 이야기를 끝으로 오늘 리뷰를 마치려고 하는데요. 파이어족인 양대리는 3노와 3예스를 실천해서 꽤 많은 돈을 모았습니다. 3노는 연애, 자동차, 술이고 3예스는 적금, 주식, 부동산입니다. 연애와 자동차, 술을 모두 포기하고 오로지 적금과 주식, 부동산으로 돈을 모은 양대리를 보면서 제 예전 삶이 떠올랐는데요. 양대리가 이런 삶을 살게 된 것은 바로 다음의 말을 사수에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조직에 충성하지마, 네 인생에 충성해

 

누군가 나에게 이 말을 조금 더 일찍 해줬더라면 아마 제 인생도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양대리는 남자의 주식인 (ㅅㅍ제약?) 바이오 테마주에 몰빵을 해서 마이너스 67.5%라는 기록적인 손실을 입습니다. 제가 예전에 코인에 잘못 투자해서 1억을 날렸던 기억이 나면서, 어찌나 양대리가 안쓰럽던지 모릅니다. 저처럼 양대리도, 또 수많은 사람들이 상상 이상의 돈을 날렸기 때문에, 이 부분은 정말 눈물이 쏟아져 났습니다. 

 

이와 같이 열두 권의 고전 명작을 가지고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벌레가 되어도 출근은 해야 해>는 책 표지에 적힌 것처럼 버티기 장인이 될 수 밖에 없는 직장인에게 너무도 큰 위로와 공감을 주었습니다. 결코 내용도 딱딱하지 않고, 가독성이 좋게 작가님께서 쉽게 쓰셨으니 꼭 한 번 읽어보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