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로그/독서 기록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리뷰(feat. 개발자에게는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동사힐 2022. 5. 11.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를 읽었습니다


한빛비즈에서 2018년에 출간한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를 리더스클럽 활동을 통해서 최근에 읽었습니다.  이 책의 이름은 2017년에 서울신문에서 연재한 특집 기사의 제목에서 유래하였는데요. 이 책은 주 52시간 제도가 법으로 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하지 않는 개발자의 과도한 노동 시간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전면 표지

반응형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라는 상당히 자극적인 제목은 결국 과로사로 죽어가는 이 시대의 수많은 개발자들의 현실을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데요. 아무리 법과 제도가 바뀌어도, 기업과 조직의 문화가 바뀌지 않는다면 결코 진정한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음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과도한 근무 시간은 옆나라 일본과 상당히 유사한데요. 이 책을 쓴 김영선 작가는 '시간의 구조'가 '삶의 결'을 바꾼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기근'은 사회의 질병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간의 민주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이는 단순히 법이나 제도를 바꾼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며 시스템과 플랫폼, 성과 체계 등 다양하게 얽혀 있는 기업의 문화와 구성원의 사고체계를 바꿔야만 된다고 주장합니다. 

 

'크런치모드'를 아시나요?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에서 시간의 예속화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 바로 개발자의 크런치모드입니다. 크런치모드는 수많은 개발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과도한 야간 장기 노동을 뜻하는 업계의 은어인데요. 크런치모드는 게임업계에서는 게임출시를 앞두고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 동안 야근과 밤샘 노동이 반복되는 기간을 가리킬 때 '크런치모드'라고 부릅니다.  김영선 작가는 자신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크런치 모드는 '공밀레'(최소한의 비용을 들이고 공대 출신 개발자들을 갈아 넣어 만든 결과물)의 21세기 버전이다. 업계 은어로 출시 마감일을 맞추기 위해 길게는 수개월 동안 야근과 밤샘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개발자를 으깨 넣는 업무 관행을 말한다. 업체들이 오해 또는 오명이라고 말하는 '판교의 등대', '구로의 등대', '오징어잡이 배'라는 표현은 크런치 모드가 무한 루프처럼 반복되는 게임업계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이다.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74쪽

 

70년대 구로공단은 90년대 이후 구로디지털단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수많은 노동자들을 오랜 시간 장기간 가혹하게 일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업계의 관행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변치 않고 지속되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수많은 개발자들을 번아웃하게 만들 뿐입니다.

과도한 노동으로 상품 집약적 여가에 의존하게 된다.

이런 장시간의 노동은 사실 업무 효율성을 상당히 저하시킵니다. 주 40시간 이상 일하면 오히려 업무 효율이 급전직하게 줄어든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연구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주 60시간씩 두 달동안 일한 생산성과 주 40시간씩 두 달 동안 일한 생산성이 '사실상 같다'는 연구 결과 또한 장시간 노동의 비효율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개발자에게 

 

개발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입니다


성과 평가의 핵심은 노동시간을 자발적으로 연장하고 알아서 짜내는 방식으로 노동의 강도를 강화합니다. 또한 디지털 모바일 기술은 노동과 비노동의 경계를 허무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이것은 '카톡 감옥'처럼 감옥의 개념을 비가시적 형태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적으면 돈으로 해결한다.



게임회사의 노동강도가 더욱 강화된 이유는 첫째로 게임의 주력 플랫폼이 온라인 PC게임에서 모바일 게임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바일 게임의 확산은 국내 온라인 PC게임 시장을 급속하게 위축시켰습니다. 동시에 게임의 생산과 유통, 소비 사이클도 급격하게 빨라졌습니다. 이로 인해 게임의 개발 기간이 급격하게 훨씬 짧아졌습니다. 온라인 PC게임은 최소 3년에서 5년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다면, 모바일은 1년도 채 되지 않습니다. 유행 주기도 훨씬 짧아지면서, 결국 양산형 게임이 만연해지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게임개발자 A씨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원래 프로세스라면 자기 의사도 반영하고 원활하게 같이 논의해야 하는데, 개발 기간이 짧으니까 논의할 시간이 없는 거에요. 그러다 보니까 시키는 대로만 하게 되죠. 좀 더 여유롭게 할 시간도 없고 만들 것만 만들죠. 그것만 해도 벅차니까요.



결국 모바일 게임의 확산으로 게임 개발 기간은 단축되었고, 게임개발자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더욱 줄어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여유는 사라져버렸고, 게임의 질은 나빠졌습니다. 게임 개발의 악순환 구조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반응형


불공정은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게임개발사는 결국 앱스토어나 구글플레이, 원스토어와 같은 플랫폼에 종속되어 갑니다. '개발사의 소작농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플랫폼은 막대한 시장장악력과 자본으로 인해 게임의 생산 과정에 전혀 개입하지 않고도, 완전히 배타적인 통제를 가능하게 하면서 동시에 엄청난 수수료를 챙깁니다. 무려 게임 전체의 이익 30% 이상을 이러한 플랫폼에서 가지고 갑니다. 이는 결국 개발자의 임금수준이나 복지에 투입될 돈이 줄어드는 현상을 발생시킵니다.


"부는 상층에 축적되고, 위험은 하층에 축적된다"

 

위의 말처럼 개발사와 퍼블리셔, 플랫폼 사이의 수익 양극화는 빈익빈 부익부로 나타납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리뷰를 마치면서 저는 한 인터뷰가 계속 마음에 남았습니다.

 

처음에는 애들이 싫어했어요. 귀찮아하고, 집에 오면 항상 아빠가 있으니까. 컴퓨터도 마음대로 못 하고, TV도 마음대로 못보고. 살살 꼬셔서 밖에 나가서 뭐도 하고 뭐도 하고 하면서 조금씩 관계가 좋아진 거죠. 1년 훨씬 지나니까 학교 갔다 와서 아빠가 없으면 전화를 해요. 지금 어디 있냐고 물어요. 당연히 가까운 관계인데, 이제 그냥 말뿐인 게 아니라 훨씬 더 가까워진 것 같아요. 돈을 좀 더 준다 해도 이제 예전으로 돌아갈 순 없어요.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193쪽



이는 주야맞교대에서 주간 연속2교대 도입 이후 바뀐 노동자의 일상을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주야 맞교대에서 주간 연속2교대로의 개편은 이처럼 일상에서 엄청난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이는 단순히 생산직에만 적용될 제도가 아닙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크런치모드로 오늘도 갈아지고 있는 수많은 개발자에게도 필요한 문제입니다.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뒷표지



개발자는 절대 기계가 아닙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문제해결러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바탕으로 한 삶의 여유가 필요합니다. 크런치모드와 같은 비상식적이고 불공정한 근무 환경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합니다. 이는 IT기업의 생산성 향상으로 직결될 것이며, 동시에 수많은 IT노동자들의 삶도 회복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를 통해서 수많은 개발자가 시간 단축의 맛, 쉼의 감각을 느끼고 공유하였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반응형

댓글

💲 추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