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로그/독서 기록

인류 역사의 발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은?(feat. 세상을 치유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다.)

동사힐 2022. 3. 14.

코로나19 오미크론에 확진되고서야, 이 책을 만나다.


2020년 2월, 코로나 19가 중국에서 시작하여 전세계로 퍼지기 시작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나는 길어야 3개월 정도겠거니 생각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메르스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때 그렇게 메르스 대응이 엉망이었어도, 3개월 정도만에 끝났는데, 하물며 문재인 정부라면 훨씬 대응을 잘할테니 길어야 3개월이고 짧으면 1달이면 끝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만큼 대한민국과 문재인 정부를 믿었고, 특히 정은경 청장을 신뢰했다.

그러나 정확히 2년이 지났고, 내 생각은 완전한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2년이 지난 지금 일일 확진자는 30만명을 넘었고, 나는 코로나 화이자 백신을 3차 부스터샷까지 맞았다. 그리고 지난 2년동안 정말 집밖을 나가지 않았고, 모든 일은 디지털 온라인 비대면으로 전환하였다. 자연스럽게 디지털 트랜스포매이션이 내 일상에서 이루어졌다. 이렇게 내 삶의 작은 전환을 이루어냈지만, 나는 결국 코로나를 피하지 못했고, 202년 2월말 결국 나를 포함한 우리 다섯 가족은 모두 코로나 오미크론에 확진되었다. 

그렇게 2년동안 조심했지만, 결국 확진되었기에 나는 무언가 말하기 힘든 패배감에 빠졌다. 도대체 지난 2년간 무엇을 위해 그렇게도 조심했던 것일까?라는 억울함 감정이 밀려왔다. 나는 백신 3차, 와이프는 백신 2차, 그리고 삼남매는 백신 없이 그대로 코로나에 걸렸고, 모두 다 다른 증상으로 코로나와 싸웠다. 결국 이겨내긴 했지만, 약 2주간 격리되면서 온갖 생각에 빠져들었다. 

이런 시기에 한빛 비즈 리더스클럽 7기에 운좋게 선정되었다. 리더스클럽 6기 활동을 하면서 책을 열심히 읽고, 리뷰를 썼지만 뭐랄까 처음 하는 리더스클럽이다보니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책을 소개하는 글을 작성해야 할 지, 감상문 형식의 글을 작성해야 할 지, 아니면 책의 내용을 통해 연상된 내용들을 바탕으로 아예 새로운 글을 써야 할 지 혼란스러웠다. 그럼에도 리더스클럽을 통해 매달 꾸준히 새로운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이것은 마치 구독 서비스 같은 느낌이 들었다. 최고급의 큐레이터가 엄선한 책을 매달 읽는 새로운 경험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리더스클럽 6기가 끝나고 7기가 시작되었다.

코로나 확진과 함께 시작한 리더스클럽 7기. 첫번째 미션으로 세 권의 책을 받았다. 그 중에서 나의 눈을 가장 먼저 사로잡은 책은 바로 로날트 D. 게르슈테가 쓴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이라는 책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끔찍한 고통에 시달렸고, 또 매일밤 고열에 시달리는 삼남매 자녀들을 돌보는 와중이었기에, 이 책이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 앞표지

밤마다 인후통에 시달려서 잠을 이루지 못했던 나는, 자연스럽게 무언가 몰입할 대상이 필요했고, 동시에 무척 재밌는 것을 원했다. 또한 지적인 쾌감도 빈틈없이 채워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내가 10대였다면, 방 안에 틀여 박혀서 이때다 싶은 마음에 문명이나 창세기전과 같은 게임을 하루종일 하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어느새 40대 초입. 그런 게임은 순간적인 몰입은 쉽겠지만, 지나고나서 허망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더이상 내게 주어진 이 소중한 시간을 허망하게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이런 마음으로 나는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459쪽이라는 꽤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책 제목만 보면 의학과 관련된 고리타분한 이야기들이 나올 것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아니다. 정말 한번 손에 잡고 읽기 시작하니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의 큰 줄기는 의학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을 담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책은 1800년대 초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전 그러니까 19세기에 20세기로 넘어가는 전환의 역사를 그렸다. 과학기술의 진보와 함께 성취를 이룬 의학에 관한 이야기가 서로 긴밀한 연결고리를 맺고 있는 역사책인 것이다.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의 작가 로날트 D. 게르슈테는 책의 처음과 끝에 다음과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썼다.

이 책의 여정이 1914년에 끝나는 것은 때로 현실을 잊고 자아도취에 빠져 헛꿈을 꾸는 시대에 따끔한 눈길을 보내기 위해서다. 세상은 치유될 수 없다. 기껏해야 개선되고,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뀔 수 있을 뿐. -로날트 D. 게르슈테,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 12쪽

 

인간이 세상을 치유할 수 있다는 생각은 키메라와 같은 것임이 1914년 이후로 거듭 밝혀졌다. 유럽 전역에 등분이 꺼졌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다시는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로날트 D. 게르슈테,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 419쪽

여기서 키메라는 사자의 머리에 염소 몸통에 뱀 꼬리를 단 상상 속의 동물이다. 불가능하다는 뜻으로 쓰인 단어다. 이처럼 의사이자 역사가인 작가 로날트 D. 게르슈테는 세상은 치유될 수 없다는 말로 이 책을 관통하고 있다. 끊임없는 기술의 진보로 인해 수많은 병을 정복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병도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마치 100년전에 스페인 독감으로 엄청난 사상자를 냈던 것과 같이 코로나19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오랜 과거가 된 그 시대는 어느새 우리 눈 앞에 펼쳐져 있음을 생각하였다. 그렇게 역사는 또 다시 반복된다. 또한 나 역시도 현실을 치유할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멈추지 않고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

존 스노

그렇게 3일 밤낮을 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해 방안에 격리되었을 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 책의 저자인 로날트 D. 게르슈테는 의사이면서도 뛰어난 장면 묘사력을 지니고 있어서 책을 읽는 맛이 났다. 특히 콜레라 역학 조사를 실시한 존 스노의 이야기를 묘사할 때면, 마치 탐정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만큼 치밀하면서도 상세하게 묘사하였고, 그의 글을 통해서 마치 18세기 후반 영국에 직접 가 있는 듯한 몰입감을 느꼈다.

시골길의 마차 안이나 일요일에 교회 가는 길을 가리지 않고 감염자들은 1리터 이상의 '썰물과 같은 설사'를 주체하지 못하고 쏟아냈다. 콜레라는 이처럼 과거 전염병의 시대에서 사람들이 감당해야 했던 정서적 수치심을 훨씬 능가하는 수치심과 혐오감을 던져주었다. -로날트 D. 게르슈테,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 162쪽

이 장면을 읽으면서, 작가의 묘사력에 다시 한번 감탄을 했다. 딱 두 문장으로 18세기 중후반 심각했던 콜레라의 상태를 묘사한 것이다. 게다가 당시 콜레라 환자들이 어떤 감정을 느꼈을 것인지 단박에 느끼도록 서술했다. 이 장면은 지금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다.

이후 존 스노가 콜레라의 원인을 하나씩 조사해가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만 하더라도 공기로 인해 병에 감염된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 존 스노는 콜레라로 사망한 사람을 까만 막대기로 표시하는 '유령 지도'를 만들었다. 이 죽음의 지도는 역학 조사와 관련하여 의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 국내에서도 역학 조사와 관련하여 다른 나라 사례를 언급하면서 존 스노의 이야기가 자주 회자되었다. 

각설하고, 존 스노가 콜레라 원인을 찾을 수 있던 것은 그가 헴프스테드의 유일한 희생자였던 한 여성의 자녀들에게 던진 질문 덕분이었다.

"어머님의 죽음에 애도를 표합니다. 주님의 축복을 받으신 어머님께서 혹시 회사 구내에 사셨나요?"

이 질문에 자녀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아니요, 저희 어머니는 공기가 나쁜 런던을 벗어나 고즈넉한 교외 지역인 헴프스테드에서 지내셨답니다."

존 스노는 동시에 비극적인 이야기를 하나 더 들었다. 어머니를 병문안했던 이즐링턴의 조카딸 역시 병문안 후 얼마 안 있던 후에 같은 병에 걸려서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조카딸 역시 이즐링턴에서 유일한 콜레라 사망 환자였다. 이 대화 끝에 존 스노는 비브리오가 함유된 물을 통해 콜레라가 퍼진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다만 안타깝게도 감염의 원인을 밝혀냈지만, 치료법은 알아내지 못했다. 이는 전염병에 직면한 의료진과 사회에 지속적인 무력감을 들게 했다. 

이러한 존 스노의 노력을 작가는 매우 흥미진진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책 뒷면에 보면 추천사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 뒷표지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발전의 시대를 생생하게 목격한다!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작가 로날트 D. 게르슈테의 해박한 의학적 지식과 함께 그의 뛰어난 묘사 덕분이다. 의학책 그리고 역사책이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 바로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이다.

특히 이 책에는 수많은 "전설이 된 보통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전설은 의사이기도 하고, 간호사이기도 한다. 또는 환자이기도 하고, 과학자나 기술자이기도 하다. 거시적인 역사가 아니라, 아주 세밀하고 촘촘하게 미시적인 역사를 그려냄으로써, 마치 눈 앞에 영화를 보듯 생생하게 지금로부터 100년전 유럽과 미국의 과학과 의학의 발전상을 하나씩 볼 수 있었다.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 앞날개

그러면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인물의 이야기를 일부만 담아보고자 한다.

 

제멜 바이스 "손을 씻으시오."


제멜 바이스

1846년 제멜바이스가 산부인과 병동에서 근무하면서 수많은 산모의 죽음을 목격하였다. 수많은 산모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던 병은 산욕열. 산욕열은 출산 후 24시간 안에 시작되곤 했는데, 산모의 몸에 열이 오르면서 복부에 염증으로 인한 고름이 가득차는 병이었다. 당시에느 공기를 통해 질병을 유발한다고 생각했는데, 빈 종합병원 제1병동과 제2병동의 사망률의 차이를 설명하지는 못했다. 환자들은 같은 건물 침대에 누워 같은 공기를 들이마셨기 때문이다. 

제멜바이스는 산욕열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1년을 넘게 연구하였지만, 결국 밝혀내지 못하였다. 1847년 봄에 제멜바이스는 잠시 휴식을 갖기로 했다. 그렇게 제멜바이스가 3주 동안의 여행을 다녀왔을 때, 제멜바이스는 자신의 친구 콜레치카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죽은 친구를 눈물로 부검하던 제멜바이스는, 콜레치카의 사인이 산욕열과 동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수로 해부용 칼이 피부에 상처를 입힐 때 치명적 물질이 불행한 콜레치카의 몸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물질은 분명 시체를 해부한 남자들, 즉 의사와 의대생의 손에도 있던 것이다. 이들은 부검실에서 곧장 산부인과 병동으로 가서 그 손을 사용해 막 출산한 산모들의 복부를 검진했다. -로날트 D. 게르슈테,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 32쪽

제멜바이스는 이를 계기로 규칙을 정한다. 이 규칙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규정이다.

손을 씻으시오.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오면서 방역 수칙으로 정말 수없이 많이 들었던 말의 첫번째가 마스크를 쓰시오라면 두번째는 바로 손을 씻으시오.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이 규칙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전염병을 막는 아주 당연하며 기본적인 공식이 19세기에만 하더라도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이 규칙은 당시 의료인에게 거부감이 있었지만, 결국 받아들여졌고 산욕열로 인한 사망률이 50% 이상에서 무려 1.2%까지 감소했다. 실로 엄청난 발견이었다. 이로 인해 염화석회 용액에 손을 씻은 의료진들의 손은 항상 벌겋게 달아오르고 쓰리고 가려웠다. 그 끔찍한 용액에 손을 씻는다는 것은 사실 피부를 도려내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그로부터 약 2년 뒤 제멜바이스는 혁명에 가담했다가 실패하고, 1850년에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의 발견은 의학에 혁명적인 영향을 끼쳤다. 

 

굿이어의 고무를 통해 완성된 사랑 : 햄프턴과 할스테드


그로부터 약 30년 뒤, 1889년 미국 볼티모어에 있는 존스 홉킨스 병원에서 외과 수석 간호사로 근무하는 캐럴라인 햄프턴은 치료하기 매우 어려운 끔찍한 습진에 시달렸다. 그녀가 습진에 시달렸던 이유는 바로 제멜바이스로부터 시작한 손 씻기 규정 때문이었다. 그 당시 손을 어떻게 씻었는지 살펴보자.

비누로 손을 씻은 후 과망가니즈산칼륨 용액에 다시 손을 세척한 다음, 뜨거운 옥살산에 손을 담그고, 이어서 독성 염화수은 용액(염화제1수은)에 또 한 번 세척했다. -로날트 D. 게르슈테,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 320쪽

이렇게 과다한 화학용액으로 손을 씻으니, 어떤 손도 멀쩡할 수는 없었다. 견디다 못한 햄프턴은 외과 간호사를 그만 두려고 했다. 이를 본 그녀의 상사이자 존스 홉킨스 병원 수석 외과 의사 할스테드는 햄프턴의 손과 팔뚝을 석고 모형으로 본떠 뉴욕에 있는 굿이어 고무 회사에 보냈다. 할스테드는 햄프턴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녀가 그만 두는 것을 견딜 수 없었고, 동시에 그녀의 손의 고통도 묵과할 수 없었다.

찰스 굿이어

굿이어는 할스테드와 햄프턴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매우 얇은 고무 장갑을 만들었다. 이 장갑은 수술 봉합용 실과 같은 미세한 질감도 느낄 수 있으면서도 증기로 살균할 수 있으 정도로 탄성이 있었다. 이 장갑으로 인해 햄프턴은 간호사를 그만 두지 않고 계속 수술실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할스테트의 청혼을 받아들여, 둘은 결혼을 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고무장갑으로 인해 감염률이 무려 17퍼센트에서 2퍼센트 미만으로 감소했다. 

할스테드

굿이어가 만든 매우 얇은 고무 장갑은 사실 굿이어가 1855년에 만들었던 이 제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바로 세계 최초의 고무 콘돔을 굿이어가 발명했다. 아쉽게도 굿이어가 살아 있을 때는 대중화가 되지 않아서 대량생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굿이어가 개발한 고무 경화법(vulcanization)은 콘돔을 대량 생산하는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굿이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세계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한 영웅이다.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의 작가 로날트 D. 게르슈테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햄프턴은 21세기에 의사가 아닌 보통 사람들도 병균으로부터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장갑을 낀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수 있다. 더군다나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의사들처럼 얼굴에 마스크를 쓴느 세상이 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지금은 당연한 것들이, 당연해지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음을 깨닫고, 우리는 감사해야 할 것이다.

 

기술의 진보는 안전을 보장하는가? 


증기기관으로 달리는 기차가 세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기점에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데 기차가 앞장설 것이라 믿었다. 온 사방으로 연결된 철도는 수많은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켜주었고, 연결된 철도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상과 지식을 전달했다. 철도를 타고 혁명의 사상이 유럽으로 들불처럼 퍼져 나갔다. 동시에 각 지역의 철도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전세계 만민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시간이 제정되었다. 바로 그리니치 평균시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00시 00분 표준시는 바로 철도로 인해 생겨난 산물인 것이다.

철도 시대에는 시간표와 철로 연결이 서로 맞아야 했다. 하나의 철로를 사용하므로 정확한 시간 관리는 필수 요소였다. 특히 철로를 따라 움직이는 통신 연결에 있어서 시간 조절 실패는 더 큰 위험의 원인이었다. 표준시간대라는 기술을 통해 기차역끼리 어떤 기차가 기다리고 또 어떤 기차가 선로를 이용할지를 '합의'할 수 있었다.  -
로날트 D. 게르슈테,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 145쪽

사실 철도가 깔리기 전에는 몇분의 개념은 크게 필요치 않았다. 시간에 개념만 있어도 충분했다. 그러나 각 정차역에서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면, 또 역과 역 사이의 기차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서 조금 더 세분화된 시간이 필요했고, 결국 분의 개념이 도입된 것이다. 이 흔적은 우리말에서도 드러나는데, 시각 7:13을 보통 일곱시 십삼분이라고 우리는 읽는다.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이렇게 시간을 읽는데, 유심히 보면 시는 고유어로, 분은 한자어로 읽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시, 두시, 세시의 한, 두, 세는 모두 고유어이고, 일분, 이분, 삼분의 일(一), 이(二), 삼(三)은 모두 한자어다. 바로 근대 개화기에 일제에 의해 조선에 철도가 설치되면서 자연스럽게 분의 개념이 들어오면서 함께 유입된 언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아픈 역사가 숨겨져 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동아시아의 작은 변방 국가 조선에서도 큰 삶의 변화를 가져온 철도, 증기기관 철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유럽은 어땠을까? 영욱의 웰링턴 공작은 철도를 보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철도야말로 하층민들도 여행할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웰링턴 공작의 말처럼 철도는 계급의 장벽을 허무는 도구가 되었다. 물론 계층별로 일등칸, 이등칸, 삼등칸으로 나뉘어져서 운행을 하긴 했지만 다양한 계층의 모든 여행자가 동시에 같은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었다. 가난하건 부유하건간에 모두를 같은 속도로 목적지에 데려다 주었기에, 귀족에게 철도는 인기가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철도는 당시의 사람들에게 큰 공포였다. 실제로 기차와 충돌하는 사고는 자주 일어났고, 기차가 선로를 벗어나는 사고도 자주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1866년에는 60대 신사가 기차의 문에 손가락이 눌리는 사고가 발생하여 심한 통증과 약간의 출혈이 있었다. 뼈는 다치지 않았기에, 상처는 완치되었다. 하지만 그 환자는 사고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고, 1년 뒤 그는 뇌 연화증으로 사망했다. 기차 사고로인한 트라우마로 사망을 한 것이다. 이처럼 그 당시 철도는 수많은 사람들의 신경계에 영향을 미쳤다. 게다가 시간에 따른 각종 알람이 울리면서 수많은 사람들은 강박증에 이르기도 했다. 이것은 훗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불리게 되었다.

타이타닉호

증기기관 철도 기차의 등장은 이렇게 빛과 그림자를 세상에 던졌다. 그런데 과학 기술의 진보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알리는 거대한 기계가 영국 남부 항구도시 시우샘프턴에도 있었다. 이 배는 강력하면서도 우아하여, 침몰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마치 한때 전세계를 호령했던 대영제국의 빛나는 순간같았다. 이 배 역시 기차처럼 다양한 계층의 승객을 한번에쓸어 담았다. 그리고 동시에 같은 목적지로 출발하여, 예정대로라면 모두 동일한 시간에 목적지 뉴욕에 내려줄 것이다. 이것 역시 인류가 진보했다는 증거 중 하나였다.

육지에서는 하층민이라고 불리었을 삼등실 승객조차도 깔끔한 선실에서 생활했고, 비록 일등실 승객처럼 식사 메뉴에 굴이나 랍스터 요리가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직원들에게 공손한 대접을 받았고 점심 식사도 제공되었다. 새로운 삶에 대한 약속이 수평선 위로 아른거렸다. -로날트 D. 게르슈테,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 393쪽

당시 1,300여명에 달하는 승객들은 탑승전에 건강 진단을 받아야 했다.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이주민들의 머리에 '이'가 있는지 확인하거나, 트라코마라는 안과 질병에 걸렸는지를 주로 확인했다. 당시 시리아 출신 삼남매의 눈에 트라코마가 발견되었고, 결국 이 시리아 가족은 승선이 거부되었다. 이 신체 검사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시리아 이민 가족은 가장 끔찍한 해양사고로부터 목숨을 구했다. 

1912년 4월 14일 오후 11시 40분에 이 배는 빙산과 충돌하였다.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의 작가 로날트 D. 게르슈테는 이것을 '배에 타고 있던 1,514명의 영혼과 선박의 죽음을 알리는 신호였다'고 묘사했다. 분명 이 거대한 선박은 진일보한 인류의 기술 발전을 상징했지만, 결국 인류를 구원하지는 못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황후 :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 황후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Kaiserin Elisabeth von Österreich)라고도 불리는 오스트리아 황후 엘리자베스는 당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황후로 불리었다. 그녀의 사진이나 그림을 지금보아도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마치 인형처럼 말이다. 그녀는 바이에른 공작 막시밀리안 요제프와 바이에른의 초대 국왕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플의 딸인 바이에른 공주 루도비카의 두번째 딸이다.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와 결혼하여 오스트리아의 황후(황제의 부인)가 되었다가 헝가리가 오스트리아에 합쳐지면서 동시에 헝가리의 왕비가 되었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왕족으로 인가 있었으며, 지금도 위키 문서 등을 살펴보면 미녀 왕비 황후의 대명사다. 그녀의 키는 무려 172센티미터로, 19세기 후반임을 감안할 때 엄청난 장신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다이어트에도 그녀는 진심이었기에, 그녀가 죽었을 때 부검 결과 50킬로그램밖에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의 다이어트 방법은 바로 끊임없는 운동. 그녀는 평소에는 우유나 오렌지 만으로 하루를 보내다가도 식욕을 참지 못할 때는 풀코스에 디저트까지 엄청난 폭식을 했다. 그렇지만 먹은 양을 훨씬 뛰어넘는 운동을 지속하여 자신의 몸매를 관리했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60세때 제네바 호숫가의 선착장에 가는 길에서 칼에 찔렸다. 이탈리아의 무정부주의자 루이기 루체니가 엘리자베스를 찌른 것이었다. 당시 부검 기록은 다음과 같다.

부검 결과 심장의 상처는 빌헬름 유스투스의 상처보다 더 깊었다. 왕족이라면 아무나 죽이겠다고 마음먹은 무정부주의자의 칼은 황후의 좌심실을 완전히 관통했고 상처가 단 하나뿐이었던 빌헬름 유스티스와는 다르게 상처를 두 군데나 만들었다. 칼이 매우 얇았기 때문에 혈액은 심막으로 서서히 들어갔고 심장의 활동을 담당하는 부분이 지나치게 손상되지 않아 심장이 몇 분 더 뛸 수 있었다. 사인은 심장눌림증으로 밝혀졌다. -로날트 D. 게르슈테,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 452쪽

이렇게 가장 아름다웠던 왕족은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도 각종 문화, 예술계에서 살아 남아 있다. 대표적으로 뮤지컬 '엘리자벳'을 들 수 있다. 또한 오스트리아의 기념품점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엘리자베스와 관련된 기념품이다.

덧붙여서 빌헬름 유스투스는 1882년 루트비히 렌이 최초로 심장 봉합 수술에 성공한 환자의 이름이다.

 

위대한 의학의 황금기


 끝으로 이 책의 뒷면 날개에는 다음의 연대표가 나와 있다. 이 책의 주요 사건들을 연대표로 구성한 것이다. 이를 통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사건을 엿볼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동안 당연한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요즘, 100년 전의 역사 찬란했던 의학의 황금기를 다룬 책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은 지금을 더욱 선명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돕는 매우 소중한 책이다.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 뒷날개

  • 1846년 보스턴에서 첫 마취
  • 1847년 이그나즈 제멜바이즈의 손 씻기 운동
  • 1851년 만국박람회 : 수천만명의 사람이 전세계에 몰리면서 환희와 공포가 함께 생겨났다.
  • 1854년 스쿠타리 야전 병원에 위생관념을 도입한 나이팅게일
  • 1854년 존 스노, 콜레라의 위협에 맞서다
  • 1859년 찰스 다윈, 종의 기원 출간
  • 1861년 미국 남북전쟁 :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전쟁 중 감염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훨씬 많았다.
  • 1863년 앙리 뒤낭의 적십자 출범
  • 1865년 조지프 리스터의 상처 소독
  • 1883년 비스마르크의 건강보험 탄생 : 그는 지금의 관점으로 보기에 매우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정치인이다.
  • 1885년 루이 파스퇴르, 광견병 연구
  • 1889년 수술실 최초의 의료용 장갑 개발
  • 1896년 빌헬름 뢴트겐, 새로운 유형의 방사선 발견
  • 1896년 루트비히 렌, 최초의 심장 봉합술
  • 1909년 파울 에들리히, 매독의 위협에서 인류를 구원하다. : 이후 에이즈라는 새로운 질병이 등장하다.
  • 1912년 타이타닉호의 침몰
  •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 인간은 세상을 치유할 수 없다.

 

이 글의 책 사진은 제가 직접 촬영한 것이며, 그 외 사진은 모두 인터넷 위키백과가 출처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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