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리처드 용재오닐의 '섬집 아기'와 기형도의 '엄마 걱정'

동사힐 2013. 4. 18.

리처드 용재오닐의 '섬집 아기'와 기형도의 '엄마 걱정'

 

 

 

 리처드 용재오닐의 어머니는 6.25 전쟁 고아로 4살 때 미국으로 입양되어 왔고, 정신지체 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누군지 모르는 백인 청년에 의해 미혼모가 되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용재 오닐이었습니다. 양 할아버지는 텔레비전 수리가게를 했고 양 할머니는 학교의 임시 교사로 생활을 했습니다. 용재 오닐은 가난했습니다. 어린 시절 백인 아이들 속에서 외톨이가 되어야 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교회생활을 하게 되었고, 용재 오닐은 예배시간 바이올린으로 찬송가를 연주했습니다. 교회 후원과 이웃의 도움으로 레슨을 계속 받았습니다. 혼자 많이 외로워했습니다. 혼자 많이 울었습니다. 그 영혼의 절규와 아픔을 음악 속에 스며들게 했습니다. 그것이 비올라였습니다. 용재 오닐은 마침내 줄리아드 음악 대학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되고 졸업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비올라 연주가가 되었습니다.

 

 그의 음반 <눈물>이 있습니다. 이 음반집에 “섬집 아기”가 있습니다. 그의 슬픈 영혼이 조용히 마음을 건드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합니다. 슬프고 애잔한데, 마음에 평안과 위로를 주고 치료를 해주는 것 같습니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섬집 아기

 

“저는 행복한 사람이에요. 자신의 감정, 인생을 음악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 기쁨 그 자체인데 슬픔, 아픔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들의 경우 말이나 폭력 등 나쁜 방법으로 표현하지만, 저는 나쁜 감정을 아름답게 음악으로 승화해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리처드 용재 오닐

 

 

엄마걱정 /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한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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