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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필즈상 수상자 허준이 교수의 서울대 졸업식 축사 전문(feat. 허준이 교수의 특별함과 필즈상)

동사힐 2022. 8. 31.

허준이 교수, 한국 최초 필즈상 수상


지난 7월 미국 프린스턴대학교·한국고등과학원 허준이(39) 교수가 수학계의 가장 권위있는 상인 필즈상을 받았습니다.

필즈상 수상 허준이 교수



한국계 최초 필즈상 수상의 영광을 허준이 프린스턴 교수가 누렸는데요. 한국으로는 최초입니다.

허준이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고등과학원(KIAS) 석학교수가 ‘필즈상’의 영예를 안았다. 한국 수학자로는 최초다.


허준이 교수는 대수기하학을 이용해 조합론 분야에서 다수의 난제를 해결하고 대수기하학의 새 지평을 연 공로를 인정받아 필즈상을 수상한 것입니다.

조합론은 하나, 둘, 셋… 하는 식으로 셀 수 있는 구조를 가진 수학적 대상을 다루는 분야로 중·고등학교 수학에 나오는 경우의 수가 이에 속하는데요, 대수기하학은 곡선, 곡면 등 기하학적 대상들과 대수적 방정식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우리가 어릴적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과목의  직선, 원, 타원, 포물선, 쌍곡선 등의 도형의 방정식이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11개의 난제를 해결한 허준이 교수



허준이 교수는 일찍이 조합론에서 대표적 난제로 알려진 리드 추측 등 11개의 난제를 모두 해결했습니다.

필즈상 선정위원회는 대수기하학의 도구를 사용해 여러 조합론 문제를 풀어 기하학적 조합론을 발전시킨 공로로 허준이 교수에게 필즈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는데요. 조합론은 우리가 학창시절 배운 경우의 수를 탐구하는 학문이고, 대수기하학은 원과 같은 기하학적 대상을 수식으로 이해하는 학문입니다.

그리고 리드 추측은 1968년 영국 수학자 로널드 리드가 제시한 문제이고, 로타 추측은 1971년 미국 수학자 잔 카를로 로타가 제시한 문제입니다. 허 교수가 푼 리드 추측은 채색다항식과 관련된 문제인데요. 채색다항식은 어떤 그래프에서 이웃한 꼭짓점은 서로 다른 색이 되도록 꼭짓점을 q개 이하의 색으로 칠하는 방법의 수를 나타낸 식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보시는 사각형 꼭짓점을 세 가지 색으로 칠한다면 두 꼭짓점의 색이 같은 경우는 총 18가지가 나옵니다.

이를 수식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데요. 이게 채색 다항식입니다. 이런 채색 다항식을 여러 개 계산해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보이는데, 바로 계수들이 증가하다가 감소하는 패턴을 보이는 겁니다. 앞서 사각형의 채색다항식을 보면 계수가 1, 4, 6, 3인데, 1과 4, 6까지는 증가하다가 6에서 3으로 줄어들잖아요.

이런 패턴, 즉 채색 다항식의 계수를 앞에서부터 차례로 따져봤을 때 증가하다가 감소하는 패턴이 모든 그래프에서 참이라는 것이 바로 리드 추측이고요. 벡터 공간까지 범위를 넓힌 게 바로 로타 추측입니다. 그런데 이 조합론의 문제에 허준이 교수가 직선, 타원, 쌍곡선 등을 분석하는 대수기하학을 접목해 증명해낸 겁니다. -출처 : YTN 사이언스



필즈상이란?


1936년 제정된 필즈상은 세계수학자대회에서 4년마다 수학계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40세 미만의 수학자에게 수여하는 수학 분야 최고의 상으로 아벨상과 함께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립니다.

만40세 미만에게만 수여되는 수학계 노벨상, 필즈상




캐나다 수학자 존 찰스 필즈의 유산을 기초로 수여되는 필즈상은, ‘아벨상’과 함께 수학자들이 받을 수 있는 가장 영예로운 상으로 꼽히는데요.

수학계 일각에서는 수상자가 4년에 한 번 발표된다는 점과 40세를 넘으면 수상할 수 없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노벨상보다 더 받기 어려운 상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물론 수학자들끼리 자평하는 것이긴 하지만요.

사실 대부분 필즈상을 처음 알게 되었죠!

필즈상은 40세 미만이 대상이란 점에서 일생의 업적을 평가하는 아벨상이나 노벨상보다 훨씬 받기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늦어도 30대 중반엔 세계적 연구 성과를 내야 해서죠. 그래서 대부분 수학 신동들이 받는다고 합니다.


허준이 교수가 대단한 이유


그런데 이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는 수학신동은 커녕, 한때 수학을 잘못했습니다. 수포자라는 자극적인 기사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수학은 굉장히 중독성있는 학문이다 -한때는 수학을 잘못했던 허준이 교수



허준이 교수는 현재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이자 고등과학원 석학 교수로 재직 중인데요. 1983년생으로 올해 만 39세입니다. 필즈상은 만 40세 미만의 수학자에게 주는 상인만큼 올해가 필즈상 수상의 마지막 기회였는데, 예상대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허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미국 국적을 가졌지만, 두 살 때 한국으로 돌아온 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대학원까지 한국에서 다니며, 한국 교육만 받았습니다. 시인이 되고 싶어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검정고시로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진학했고요.

대학 공부도 쉽게 적응하지 못해 대학만 6년을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다 마지막 해 수리과학부 초청 강연에서 필즈상 수상자인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를 만나 수학의 매력에 빠져들었는데요. 이후 석사 과정부터 대수기하학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지난 2012년 수학계 난제인 '리드 추측'을 해결하면서 수학계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2018년 로타 추측을 해결하는 등 10여 개의 수학 난제를 해결하면서 이번에 필즈상을 받게 됐습니다.

필즈상 수상자 대부분이 어릴 때부터 천재로 두각을 드러냈지만, 허 교수의 초등학교 시절 수학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다만, 퍼즐처럼 논리적 사고력을 요하는 문제에는 스스로도 번뜩이는 통찰력을 느꼈다고 한다.

아버지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와 어머니 이인영 서울대 노어노문과 명예교수의 미국 유학시절 태어난 허 교수는 한국에서 초중고를 마친 ‘국내파’다. 본래 시인을 꿈꾸면서 생계유지 방편으로 과학기자를 희망해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입학했다.

  학부 졸업반 때 우연한 기회로 인생경로가 달라졌다. 서울대에 초빙된 일본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를 만나면서다. 1970년 필즈상을 받은 히로나카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쓸 목적으로 대수기하학 강의에 들어갔다가 수학에 푹 빠진 것이다.

  이후 서울대 대학원 수리과학부 석사과정을 밟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과정 1학년 때 리드(Read) 추측을 시작으로 강한 메이슨(strong Mason) 추측, 다우링-윌슨 추측 등 오랜 난제들을 증명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박사학위를 받고 3년이 지난 2017년, 다른 수학자 두 명과 로타 추측을 증명하면서 ‘수학계의 정점에 섰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수학계에서는 늦깎이 수학자의 놀라운 성과에 대해 ‘18세에 테니스 라켓을 잡은 선수가 20세에 윔블던에서 우승한 셈’이라고 비유한다. -출처 : 중앙일보
18세에 테니스 라켓을 잡고 20세에 우승한 셈


위 기사처럼 허준이 교수는 뒤늦게서야 시작한뒤 한번 방향을 정한 후로 엄청난 속도로 두각을 드러내어 업적을 쌓은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76회 서울대학교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축사를 맡게 된 허준이


지난 8월 29일 서울대학교 후기 학위수여식이 열렸는데요.

서울대학교(총장 오세정)는 8월 29일 관악캠퍼스 종합체육관에서 제76회 후기 학위수여식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번 학위수여식은 서울대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중계됐으며 학사 959명, 석사 1041명, 박사 700명 총 2700명이 학위를 받았다.

올해 한국계 수학자 중 처음으로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프린스턴대,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학사 및 수리과학부 석사)가 축사 연사로 초청돼 후배들에게 격려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으며 '제32회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으로 선정돼 시상도 이어졌다.


거기서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는 졸업식 축사를 했습니다. 서울대 졸업식 축사 전문으로 오늘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서울대 졸업식 축사 허준이 교수


수학자 허준이의 서울대 졸업식 축사 전문


안녕하세요, 07년도 여름에 졸업한 수학자 허준이입니다.

우리가 팔십 년을 건강하게 산다고 가정하면 약 삼만일을 사는 셈인데, 우리 직관이 다루기엔 제법 큰 수입니다.

저는 대략 그 절반을 지나 보냈고, 여러분 대부분은 약 삼 분의 일을 지나 보냈습니다.

혹시 그중 며칠을 기억하고 있는지 세어 본 적 있으신가요? 쉼 없이 들이쉬고 내쉬는 우리가 오랫동안 잡고 있을 날들은 삼만의 아주 일부입니다.

먼 옛날의 나와, 지금 여기의 나와, 먼 훗날의 나라는 세 명의 완벽히 낯선 사람들을 이런 날들이 엉성하게 이어 주고 있습니다.

마무리 짓고 새롭게 시작하는 오늘 졸업식이 그런 날 중 하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하루를 여러분과 공유할 수 있어서 무척 기쁩니다.

학위수여식에 참석할 때 감수해야 할 위험 중 하나가 졸업 축사가 아닌가 합니다.

우연과 의지와 기질이 기막히게 정렬돼서 크게 성공한 사람의 교묘한 자기 자랑을 듣고 말 확률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겁이 나서, 아니면 충실하게 지내지 못한 대학생활이 부끄러워 십오 년 전 이 자리에 오지 못했습니다만, 여러분은 축하받을 만한 일을 축하받기 위해 이를 무릅쓰고 이곳에 왔습니다.

졸업식 축사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요? 십몇 년 후의 내가 되어 자신에게 해줄 축사를 미리 떠올려 보는 것도, 그 사람에게 듣고 싶은 축사를 지금 떠올려 보는 것도 가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당연하게 떠오르는 말은 없습니다.

지난 몇천 일, 혹은 다가올 몇천 일간의 온갖 기대와 실망, 친절과 부조리, 행운과 불행, 그새 무섭도록 반복적인 일상의 세부 사항은 말하기에도, 듣기에도 힘들거니와 격려와 축하라는 본래의 목적에도 어울리지 않을 것입니다.

구체화한 마음은 부적절하거나 초라합니다.

제 대학생활은 잘 포장해서 이야기해도 길 잃음의 연속이었습니다.



똑똑하면서 건강하고 성실하기까지 한 주위 수많은 친구를 보면서 나 같은 사람은 뭘 하며 살아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잘 쉬고 돌아오라던 어느 은사님의 말씀이, 듬성듬성해진 성적표 위에서 아직도 저를 쳐다보고 있는 듯합니다.

지금 듣고 계신 분들도 정도의 차이와 방향의 다름이 있을지언정 지난 몇 년간 본질적으로 비슷한 과정을 거쳤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 더 큰 도전, 불확실하고, 불투명하고, 끝은 있지만 잘 보이진 않는 매일의 반복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힘들 수도, 생각만큼 힘들 수도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어른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 편안하고 안전한 길을 거부하라. 타협하지 말고 자신의 진짜 꿈을 좇아라.

모두 좋은 조언이고 사회의 입장에서는 특히나 유용한 말입니다만, 개인의 입장은 다를 수 있음을 여러분은 이미 고민해 봤습니다.

제로섬 상대평가의 몇 가지 퉁명스러운 기준을 따른다면, 일부만이 예외적으로 성공할 것입니다.

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쳐버린 타인이,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기 바랍니다.

나는 커서 어떻게 살까, 오래된 질문을 오늘부터의 매일이 대답해줍니다.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일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오래전의 제가 졸업식에 왔다면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고민했습니다만 생각을 매듭짓지 못했습니다.
그가 경험하게 될 날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가슴 먹먹하게 부럽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에게 선물할 어떤 축사를 떠올리셨을지 궁금합니다.

수학은 무모순이 용납하는 어떤 정의도 허락합니다.


수학자들 주요 업무가 그중 무엇을 쓸지 선택하는 것인데, 언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가능한 여러 가지 약속 중 무엇이 가장 아름다운 구조를 끌어내는지가 그 가치의 잣대가 됩니다.

오늘같이 특별한 날 특별한 곳에서 특별한 사람들과 함께하니 들뜬 마음에 모든 시도가 소중해 보입니다.

타인을 내가 아직 기억하지 못하는 먼 미래의 자신으로, 자신을 잠시지만 지금 여기서 온전히 함께하고 있는 타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졸업생 여러분, 오래 준비한 완성을 축하하고, 오늘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합니다.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친절하시길, 그리고 그 친절을 먼 미래의 우리에게 잘 전달해 주길 바랍니다.

응원합니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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