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감

신림동 반지하 침수와 세월호 참사(feat. 신철규 시인의 검은 방 그리고 기후위기와 인권문제)

동사힐 2022. 8. 19.

최근 서울에 기록적인 비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지난 8월 초 서울에 기록적인 비가 쏟아졌습니다. 저는 신림동 반지하 비극을 보며 신철규 시인의 <검은 방> 시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지구만큼 슬픈 이 사건을 기록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80년만에 엄청난 강수량이라고 합니다. 기후 위기가 문제라고 합니다. 대통령과 지자체장의 대응이 문제라고 합니다. 천재지변이 아니라 인재라고도 합니다.

누군가는 비가 오는데 퇴근해서 문제라고 합니다. 누구는 비가 오는데 술을 마시고 SNS에 올려서 문제라고 합니다. 누군가는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강남이 침수되어서 문제라고 합니다. 수많은 고급 외제차들이 침수되어서 엄청난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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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현자(물에 잠긴 제네시스 위에 앉은 분)와 신림동 펠프스(넘쳐버린 하천물에서 수영하는 분)가 언론에서 다뤄졌습니다. 수많은 가짜뉴스도 함께 돌아다닙니다. 올림픽대로와 잠수교를 비롯한 많은 서울시내 교통이 통제되었습니다. 이렇게 여러가지 사건들이 이번 침수때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가장 마음에 닿았던 것은 바로 신림동 반지하 비극이었습니다.

고급 외제차 침수보다 신림동 반지하 비극이 제게는 더 와닿았습니다.


비극적 사건이 발생한 신림동 반지하 침수 현장
지난 8일 수도권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9일 신림동의 한 주택 반지하에서 A씨와 발달장애인 언니(48), A씨 딸(13)이 숨진 채 차례로 발견됐다. 사고 당시 A씨는 복도에 물이 가득 찬 탓에 집 안에서 문을 열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 가족은 당시 소방과 경찰에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폭우로 통화량이 많아 바로 구조받을 수 없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폭우로 인한 침수는 순식간에 일어났고, 도로에 물이 허벅지 높이까지 차면서 현관문이 열리지 않는 상황이었다.

유일한 탈출구인 창문으로 피신시키기 위해 방범창을 뜯어내려 했지만 몇 초 만에 물이 차올랐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소방 관계자가 현장에 도착한 뒤 방범창을 뜯고 배수 작업을 마쳤을 때, 집안에 있던 A씨 가족은 모두 숨진 상태였다. 이들과 같이 살았던 A씨 어머니는 사고가 벌어진 당시 병원 진료를 위해 집을 비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 : 조선일보 “큰 충격과 슬픔”... 신림동 반지하 비극에 추모 물결 이어져

언론에서는 수많은 비싼 고급 외제차들의 침수를 비중있게 다뤘습니다. 강남의 고급 아파트 침수 사건을 언론에서 중요하게 다뤘죠. 또한 대통령과 지자체장의 대응도 언론에서는 자주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가장 와닿았던 것은 바로 신림동 반지하 참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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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반지하 참사는 외신에서도 이제는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반지하(Banjiha)로 다루어질 정도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충격으로 받아졌습니다. 2022년, 21세기에 도저히 믿기지 않은 그런 지옥같은 끔찍한 비극이 나타난 것이죠.

신림동 반지하에는 A씨 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40대 중반의 A씨는 남편없이 홀로 초등학교 6학년 딸 하나를 데리고 살고 있었죠. 그뿐만 아니라 A씨는 노모와 48세의 언니와도 함께 살았습니다. 48세 언니와 함께 살았던 이유는 바로 발달장애인이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A씨는 힘겨운 삶을 반지하에서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그날은 8월 8일이었죠. A씨의 노모는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있었습니다. (어느 기사에서는 입원을 했다고 나오기도 하고, 어느 기사에서는 진료를 위해 병원에 갔다고만 나오기도 합니다.) 어쨋든 확실한 건, A씨의 어머니는 집에 없었다는 것이죠.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A씨의 어머니는 이 비극적인 반지하 침수때 집에 없었고,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A씨의 어머니를 제외한 A씨와 그의 언니, 그리고 그녀의 13살짜리 딸까지 모두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반지하로 물이 차고 넘쳤고, 엄청난 물의 무게로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물은 계속 방안으로 들어왔습니다. A씨는 경찰서와 소방서에 구조 요청을 위한 전화를 지속적으로 합니다. 병원에 있던 A씨의 어머니 역시 이 사실을 알고 마찬가지로 구조요청을 합니다.

하지만 그날은 A씨의 집뿐만 아니라 서울 전체가 물속에 잠겼던 날입니다. 수많은 시민들의 구조요청으로 모든 구조대원들은 바쁘게 움직였고, A씨의 가족들에게 구조의 손길은 자꾸만 늦어졌습니다.

결국 반지하 방범창을 뜯어내고, 탈출하려고 했지만 급속도로 불어난 물은 결국 소중한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소방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했을때는 모두 숨진 상태였습니다. 저는 이 기사를 보며 참담하고 애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홀로 남게 된 A씨의 어머니의 그 엄청난 슬픔을 비루한 저로서는 1/10도 알지 못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한 순간에 자신의 두 딸과 하나뿐인 손녀를 저 세상으로 보내고, 침수되었다가 물이 빠진 흙탕물 가득한 자신의 반지하 집을 바라보면서 A씨의 어머니는 어떤 생각이 드셨을까요.

이 글을 쓰는 가운데에도 비통한 슬픔은 차마 가시지 않습니다.

신림동 반지하 침수 참사를 보며 신철규 시인의 검은 방이 떠올랐습니다.


신철규 시집 &lt;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gt;
슬픔의 과적 때문에 우리는 가라앉았다
슬픔이 한 쪽으로 치우쳐 이 세계는 비틀거렸다

신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그것이 일반명사인지 고유명사인지 알 수 없어 포기했다
기도를 하던 두 손엔 검은 물이 가득 고였다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최대한 가만히 있으려고 할수록 몸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딱딱해지고 있었다

해변에 맨발로 서 있던 유가족
맨살로 닿을 수 없는 거리가 그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죽을 때까지 악몽을 꾸어야 하는 사람들의 뒷모습
학살은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꾸는 악몽 같은 것

손가락과 발가락까지 피가 돌지 않고
눈이 심장과 바로 연결된 것처럼 쿵쾅거렸다

모든 것이 가만히 있는 곳이 지옥이다
꽃도 나무도 시들지 않고 살아 있는 곳
별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멈춰서 못처럼 박혀 있는 곳
죽은 마음, 죽은 손가락, 죽은 눈동자

위로받아야 할 사람과 위로할 사람이 한 사람이라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기도밖에 없는 것인가

우리는 떠올라야 한다
우리는 기어올라야 한다
누구도 우리를 끌어올리지 않는다

가을이 멀었는데 온통 국화다
가을이 지난 지가 언젠데 국화 향이 이 세계를 덮고 있다
컴컴한 방에 검은 비닐봉지를 쓰고 앉아 있는 것처럼 숨이 막힌다
꿈속에서도 공기가 희박했다

해변은 제단이 되었다
바다 가운데 강철로 된 검은 허파가 떠 있었다

-검은 방, 신철규

언제쯤이면 지구만큼 슬픈 사건은 사라질까요?


신철규 시인의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에 "검은 방"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 시는 세월호 참사를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신림동 반지하 침수 비극을 접했을 때 왜인지 모르게 이 시가 떠올랐습니다. 아마도 물이 차오르면서 죽어갔다는 공통점 때문인 듯 싶습니다. 반지하에 점점 물이 차오르면서, 숨이 막혀 죽어간 그분들을 떠올리면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과 상실감도 가득합니다. 세월호 참사때도, 그리고 이번 신림동 반지하 참사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반지하에 함께 살다가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하여 이번 참사를 피한 할머니.

다행히 이번 침수 피해를 겪지 않았지만, 자신의 딸 둘과 손녀딸을 모두 잃어버린 할머니의 슬픔은 아마도 지구만큼, 아니 그 이상 슬플 것 같습니다. 언제쯤이면 이런 비극적인 지구만큼 슬픈 일들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까요?

컴컴한 방에 검은 비닐봉지를 쓰고 앉아 있는 것처럼 숨이 막힌다
꿈속에서도 공기가 희박했다


이 컴컴한 방을 떠올리면 신림동 반지하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있는 이 곳이 검은 방처럼 느껴집니다. 이 세상에 이런 지구만큼 슬픈 비극적인 일들이 계속 되는 한 저는 언제까지나 숨이 막히면서 꿈속에서도 호흡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기후위기는 인권의 문제이자 생존의 문제


사실 이번 침수는 기후위기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기후위기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면서도 동시에 인권의 문제입니다. 언제나 이러한 끔찍한 사건은 가장 연약하고 힘이 없으며 가난한 계층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힙니다. 기후위기로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고, 소득이 낮은 계층일수록 타격이 심할 것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말합니다. 이번 서울 침수로 가장 피해를 본 것은 소득이 높은, 강남의 외제차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냐고 말이죠. 가진 것이 많을수록 잃는 것이 많은 것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보면 기후위기로 가장 어렵고 가난한 수많은 사람들은 생존의 문제를 위협받습니다.

‘폭염 민감계층의 건강피해 최소화 방안’ 보고서(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책임자 채수미)에 따르면 교육 수준, 비만, 독거 여부, 에어컨 사용, 지자체 도움, 만성질환 등의 지표를 적용해 실태를 조사했다.

민감계층인 저소득층의 경우 일상생활 공간의 온도를 견디기 어렵다는 응답은 절반 가까운 49.1%였다. 일반 인구집단 응답 비율(35.2%)보다 높았다. 수면공간 온도를 견디기 어렵다(저소득층 52.8%, 일반 44.2%), 주거공간 환기가 어렵다(저소득층 15.2%, 일반 8.6%)는 응답도 마찬가지였다.

에어컨이 없는 저소득층은 14.1%(일반 2.5%)였는데, 에어컨이 있어도 전기요금 때문에 충분히 이용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68.6%(일반 44.9%)에 이르렀다.

여름과 마찬가지로 겨울도 그렇다. 기후민감계층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이유가 있다. 9년째 겨울철 에너지빈곤층 실태조사를 하고 있는 에너지시민연대는 서울·부산·광주·대구·목포의 에너지빈곤 300가구를 대상으로 비대면 유선조사를 했다. 노인 가구가 247가구(82.3%)로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조사 대상의 절반 가까운 132가구(44%)가 한파로 인해 건강 이상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상은 감기(29%), 신경통(22%), 관절염(18%), 두통(13%) 차례였다. 111가구(37%)는 한파를 겪은 뒤 약국 또는 병원을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1980년도 이전에 지어진 40년 이상 된 주택 거주자가 189가구(63%)였다.

이들이 머무는 집은 에너지 효율을 결정하는 창호 기능 만족도(5점 기준)에서 통기성(2.9점), 채광(2.7점), 기밀성(2.8점), 결로 (2.9점), 유리·창틀·벽체 균열(3.0점), 창틀 뒤틀림(3.0점), 개폐력 저하(2.9점) 등 모든 분야에서 점수가 낮았다. 이처럼 기후민감계층이 실제 느끼는 기후위기의 문제는 인권과 직결된다는 것을 시민들이 깨달아야 한다.

이런 기후변화에 대비한다면 기후민감계층에게 단기적으로는 에너지지원이 장기적으로는 주거 환경개선이 필수적이다. 결국 기후위기의 해결책은 평등한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위기로 타격을 입었을 때 소득과 자산의 손실 비율이 가난한 사람이 부유한 사람보다 더 크다.

부유한 사람은 위험에서 피할 수단을 가지고 있지만, 가난한 사람은 위험을 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이 때문에 더 가난해지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유엔 빈곤·인권 담당관 필립 알스턴이 2019년 유엔인권협의회(HRC)에 제출한 ‘기후변화와 빈곤’에 관한 보고서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사람과 그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사람 사이에 기후 ‘아파르 트헤이트’에 직면해 있다고 분석했다.

출처 : 한국에너지정보센터(http://www.energycenter.co.kr)

위에서 인용한 한국에너지정보센터의 글처럼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고, 삶을 영위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번 신림동 반지하 참사처럼 삶의 터전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소중한 생명마저도 지키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기후위기와 인권은 뗄레야 뗄 수 없으며, 기후위기로 인해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기후위기는 삶을 위협하는 인권문제입니다. 가진자는 자꾸 배출하고, 가지지 못한자는 자꾸 피해를 볼 것입니다. 기후위기는 과거 세대의 무분별한 방출로 미래 세대가 고스란히 피해를 볼 것입니다.

기후위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지금 어린 세대는 기성세대처럼 사치스러운 이산화탄소 배출을 누릴수 없다.

허용 가능한 배출량이 이미 대부분 소진되었기 때문이다.

영국 기후단체 카본브리프 분석에 따르면,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 이하로 막으려면 어린이와 청소년(1997~2012년생)은 그들의 조부모(1946~1964년생)가 쓰고 누리기 위해 배출한 양에 비해 단지 6분의 1 정도만을 배출할 수 있을뿐이다.

온실가스는 배출 후 바로 사라지지 않고 수백 년 동안 대기 중에 누적된다. 미래세대는 자기들이 배출하지 않은 온실가스 때문에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출처 : 한국에너지정보센터(http://www.energycenter.co.kr)

2014년의 세월호 참사부터 2022년의 신림동 반지하 참사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기후위기로 인한 끔찍한 참사까지. 우리는 이러한 슬픔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슬픔으로 가라앉는 금요일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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