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 101이 현실에서도 가능할까?(feat. 존재 자체가 꼰대)
최근에 교사인 친구가 장문의 글을 하나 보내줬다. 그 글이 매우 인상 깊어 블로그에 공유를 하고자 한다. 글 그대로를 올리지는 못하고, 어느 학교인지 알 수 있는 정보는 약간의 각색을 해서 수정했다. 교사와 학생의 새로운 관계를 꿈꾸는 글이다.
사소한 지시도 빠짐없이
2월 22일로 기억합니다. 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을 보냈습니다. 모든 학생들에게. 개학 일주일 전부터 모두 건강상태 자가진단 앱을 설치하여, 매일 자신의 건강을 기록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건강상태 자가진단. 선생님도 2년째 하고 있지만. 솔직히 너무 번거롭고 귀찮습니다. 매일 빠짐없이 하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일 정도입니다.
나 또한 자꾸 잊어서, 결국 아이폰의 '단축어' 기능을 활용해서, 오전 6시에서 8시 사이에 학교에 도착하면 자동으로 건강상태 자가진단 앱 기능을 실행하는 단축어를 설정했을 정도입니다. 이 기능을 활용해도 잊어 버릴 때가 많습니다.
우리반 담임을 맡으면서 처음에 걱정도 많았습니다. 매번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니까요. 매일 출석부 사진을 보면서 우리반 얼굴을 하나하나씩 보았지만, 쉽게 익혀지지도 않았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모두 낯설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직 개학도 안했는데, 우리반을 만난 적도 없는데, 학교에서는 건강상태 자가진단 앱에 접속해서 매일 우리반 학생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라고 합니다. 솔직히 왜 그래야 하나 교육부 지시에 반감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요. 나도 잘 안하는 걸, 우리반 학생들이 한명씩 한명씩 앱을 설치했고, 건강상태를 입력하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놀랐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한 학생은 개학 전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입력을 했습니다. 이건 정말 기적같은 일이었습니다. 아마 우리학교에서, 아니 전국에서도 손꼽힐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매일 잊지 않고 건강상태를 기록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러면서 나는 우리반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고, 친근하게 그리고 감정적으로는 좋다고 느꼈습니다. 이런게 아마 입덕의 순간이지 않을까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이 한 명의 꾸준한 노력을 보면서 우리반 모두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같은 아이돌을 좋아하더라도 백명에게 물어보면 백명 모두의 입덕계기가 천차만별로 다르듯이, 내가 우리반에 입덕한 계기를 꼽아보라면 우리반의 '건강상태 자가진단' 설치 및 실행을 꼽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볼때는 우습게 보일지 몰라도, 사실 저는 매일 우리반 '건강상태 자가진단' 실행 여부를 보면서 여러분들을 덕질했습니다.
각설하고, 인터넷 포털로 유명한 N사에 다니는 제 친구한테 들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회사에서 일을 잘한다고 인정받는 팀원의 기본적인 태도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좋은 학벌이라고, 학점이 좋다고 일을 잘한다 소리를 듣는 것만도 아니고, 코딩 테스트를 잘풀고, 개발 실력이 좋다고 일을 잘한다 소리를 듣는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거나 학점이 낮아도, 코딩 테스트를 잘 풀지 못하고 전공 실력이 조금 낮아도 일을 잘한다 소리를 듣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 차이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사소한 지시도 빠짐없이 놓치지 않는 태도였습니다. 이 태도가 일잘러가 되는 아주 기본적인 원칙이었습니다. 앞으로 1년 동안 우리반에게 바라는 여러가지 모습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이 태도, 사소한 지시도 빠짐없이 놓치지 않고 모두 하는 태도를 배웠으면 합니다. 이 태도를 우리반이 조금씩 길러 나갈때, 우리는 그것을 '성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반 모두 2022년은 사소한 지시도 빠짐없이 놓치지 않는 태도를 성장시켰으면 합니다.
끝으로 나는 여러분의 담임이지만, 동시에 프로듀서이자 덕후가 되고 싶습니다.
내 눈에 여러분들은 그 어떤 아이돌보다 빛나니까요.
-학생과 교사의 새로운 관계를 상상하면서 이 글을 나의 아이돌들에게 바칩니다.
솔직히 이 글을 보면서 내 눈을 의심했다. 이 무언가. 오글거림. 프로듀스 101도 아니고. 국민 프로듀서가 되겠다는건지. 학생들의 덕후가 되겠다는건지. 코로나가 오래되면서 정신줄을 놓은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한 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90년대생과 함께 소통하고 일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지금 학생들은 90년대도 아닌 00년대생. 얼마나 소통하기 힘들까? 그런 소통의 어려움을 위해서 결국에는 학생을 가르침의 대상이 아닌 존중과 배려, 배움의 대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2022.03.10 - [북로그/독서 기록] - 드라마 PPL을 찾아보라고 했더니 사극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을 보았다고?(feat. 90년생 이대리를 웃게 하는 방법)
최근에 읽은 책인 김범준 작가의 '80년생 김 팀장과 90년생 이대리가 웃으며 일하는 법'의 내용과 결국은 같은 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구는 점점 급속하게 줄어가는 마당에, 교사라는 직업을 하기는 아마 더욱 어려워지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또한 매번 새로운 세대를 맞이하는 입장에서 가장 보수적인 집단 중 하나인 교사들이 누구보다 빠르게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도태될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동시에 학생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단군 이래 누구보다 가장 빠르게 적응하고, 정보화 기기를 다루는 세대로써, 학교라는 공간이 얼마나 고리타분하고 따분할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또한 그 누구보다 더 심하게 꼰대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학생. 교사라는 존재, 직위, 나이 자체가 이미 꼰대이자 권력일 수 있을테니,,, 특히 평가와 성적을 무기로 학생을 교육이 아닌 사육하고 통제하려는 교사들을 만날때, 학생들은 얼마나 좌절할까? 동시에 세상과 기성세대에 대한 경계심이 들까? 하는 생각이 들면 가슴이 저려온다.
결국 이런 최악의 갈등 상황이라면 한 살이라도 더 나이가 많은 세대, 조금이라도 권력과 책임을 가진 세대가 전향적으로 소통하고 배려하고자 노력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권력과 책임은 이럴때 쓰라고 있는 것 아닐까?